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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본문

Books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퐁~★ 2019. 10. 24. 13:25

일시 : 2019.10.17

제목 :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저자 : 김헤남, 박종석

책 속 문구 :

흔히들 조울증을 기분이 좋다가 우울했다가를 수시로 왔다 갔다하는 병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조울증은 일정 기간의 조증 시기와 일정 기간의 우울증의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며, 보통 그 기간은 각각 2주 정도 지속된다. 또한 조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분이 들뜨고 에너지가 넘치는 조증도 있지만 조울증에서 더 자주 나타나는 조증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고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는 증상이다.짜증이 나는데 왜 조증일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따. 조증(mania)은 기분이 들뜨고 흥분된 상태, 비정상적으로 에너지가 과민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외부의 자극에 엄청나게 예민하고 날이 서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도한 집중력과 지나친 생각이 본래의 유쾌하고 좋았던 기분을 사라지게 하고 의심과 피로감을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애도반응이나 우울증 모두에서 다 나타날 수 있지만, 애도반응에서는 자기존중감의 장애는 없다. 반면 우울증에서 자기존중감의 저하와 자아의 빈곤이 온다.

 

왜 상실을 슬퍼하기보다 우울해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애도에서는 분명한 대상상실이 있고, 따로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상실은 없다. 그러나 우울증은 보다 이상적인 어떤 것의 상실이 온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빈곤과 상실로 이어지는 것으로서, 애도반응에서 빈곤해지고 텅 비어버리는 것이 외부세계라면, 우울증에서 텅 비고 공허해지는 것은 바로 자아이다. 즉 애도는 대상을 잃었다는 게 문제지만, 우울증은 자아를 상실했다는 데 그 초점이 있다.
줄째로 자기 존중의 상실이 있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해 진실을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자신은 이기적이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며, 의존적 성향이 강하지만 이를 감추고 있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이런 자기 비난과 고백을 다른 사람 앞에서 별다른 수치심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 우울증에서 보이는 이상할 정도의 자존감 감소, 자아의 빈곤함, 심한 열등감, 자기에 대한 비난 등의 증상은 자신의 자아를 소모 시키려는 행동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건강하게 흘려보내지 못하니 결국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퇴행과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이다. 우울증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함으로써 그 사랑 관계 내에 있던 애증의 양가감정이 드러나면서 우울이 강화된다. 그런데 이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후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여 자아와 대상을 동일시함으로써 도피한다. 즉 대상으로 향하던 욕동이 자기애적 동일시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랑 관계 속에 있던 미움까지 작동하게 되며, 이 미움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그러면서 그 고통을 통해 가학적인 만족을 얻는다. 즉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원래의 대상에게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은 이미 자기의 일부가 된 것을 병을 통해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상실의 고통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그저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아픔을 싣고 지나가도록,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공황장애란 심한 불안 발작과 이에 동반되는 신체 증상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내 삶의 핸들은 물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도 오롯이 나의 의지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되 타인의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옆 사람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덩달아 속도를 올리다 보면 나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게 한번 속도의 균형감이 깨지고 필요 이상의 과속을 이어가다 보면 탈진을 피할 수 없다.
나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속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임상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재발되는 경우에 의학적으로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 진단한다.

 

만성피로 증후군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들을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는 곧 피로의 원인이 된다. 공포스러운 환경에서 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렇게 무서워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지면 자신의 감정을 알고 그것을 자아의 통제 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감정은 한 번 일어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게 되어 있다. 감정은 막으려 하면 더 커지는 법이다. 그냥 시냇물처럼, 바람처럼 감정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두자. 그러면 그 감정은 점차 수그러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는 말은 감정을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분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감정은 분출하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격정에 더 머무르게 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고양되면 혈압의 상승이나 떨림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며, 이렇게 흥분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는 화를 부르고 미움은 미움을 강화하게 된다. 감정은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의 원래 기능 중 하나가 소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이다. 아무리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불안감에서 혼자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때문에 내가 불안장애를 겪는다면 병원 치료와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내 옆의 소중한 누군가가 불안장애를 겪는다면 그냥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옆에 있어 주면 된다. 당신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들보다 내가 더 가까이에서 당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데 알고 보면, 방황하면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것 그 자체가 그분의 참자아인 거죠. 우리는 생의 모든 순간을 '나'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나조차도 나인 것이죠.

 

영국의 정신분석가 해리 건트립은, 사람은 자신을 약한 존재로 인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쁜 존재로 인지하는 것을 더 원한다고 했다. 즉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약한 자기를 경험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를 공격성, 죄책감 등이 있는 나쁜 자기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약한 자기는 안에 깊숙이 숨겨버리고, 밖에는 이러한 약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나쁜 자기를 출몰시켜 죄책감이나 분노 등의 갈등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과 태도를 완전히 분리할 경우, 결국 안에는 약하고 무기력한 자기가 숨어서 보호되고 밖에는 두려움에 떠는 나쁜 자기가 대두되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설령 그들에게 그러한 약한 모습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강함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내보이며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긴다. 슬픔과 우울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건강하게 배출하고 건강하게 이겨낸다.

 

열등감의 동굴 속에서 지겹도록 무력했던 나는 자책이야말로 상대방과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 왜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더는 이런 의문과 후회가 아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오늘 좌절해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켜켜이 쌓은 노력이 가져다줄 기회와 인연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느낀 점 :

개인 감정 조절 등의 문제와 나에 대한 궁금함이 한참일 무렵 정신 분석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었고 이 당시 의사 김혜남씨의 저서 심리학이 서른살에 묻다 등의 책들을 많이 읽어서 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과거에 비해 정신 분석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작가에 대한 반가움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동 저서인 것 같은데 글에 따라 문체 등이 조금 달라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뚜렷하게 누가 쓴 부분인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는 심리학 책이여서 인지 과거에 나에 비해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화를 조절하는 방법 등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이를 위해 절박하게 읽어서 감정 제어 부분에만 집중해서 봤었다. 최근에는 자존감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어 감정 제어보다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부분에 더 관심이 갖다.

"열등감의 동굴 속에서 지겹도록 무력했던 나는 자책이야말로 상대방과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존감이 없어진 이유도 개인의 실패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서 끊임없는 자책을 하다보니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나이기에 자책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도 그리고 가장 쉬운 것인지도 알고 있어 이 문장이 내게 와 닿았다.

"근데 알고 보면, 방황하면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것 그 자체가 그분의 참자아인 거죠. 우리는 생의 모든 순간을 '나'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나조차도 나인 것이죠."
중년에 가까워질 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함이 많아져 간다. 이대로 살아가도 좋은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이 참 많다. 자꾸 나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민하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실패하면서도 나를 찾는 게 나구나 싶었다.

"감정은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 정신 분석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욱했을 때 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해 상심이 컸었기에 이런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때는 이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었겠지만 지금은 이말이 참 와 닿았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적절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매번 책으로 읽고 다짐한다. 이러지 말자. 이렇게 행동해야지. 저렇게 행동해야지 그러나 실제로 책에서 제시한 일기 쓰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는 안해보고 반복해서 읽을 수록 지식은 늘어나는 데 실제로 내 몸에 체화되진 못해온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분야 책을 여러 번 읽다보니 지식은 늘어난 것 같다. 지식에 남지 않고 몸에 적용해서 더 이상 내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삶에 적용할 점 :

그만 자책하고 나를 조금만 사랑해주라. 그리고 감정을 분출하지 말고 표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