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본문
일시 : 2016.05.03
제목 :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저자 : 조한별
내용 :
어려운 고전을 읽고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똑똑하지 않아야 배움이, 공부가 시작된다. 똑똑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왜지?"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고 그 질문을 통해 중요한 것이 길러진다. 스스로 '진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책을 읽고 이해했다고 착각해도 안 될 일이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게으른 생각을 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그 답은 자꾸 반복하고 있듯이 모든 튜터들이, 그리고 세인트존스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질문하기'에 있다.
중국에 어떤 부지런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농사를 잘 지어보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고 불타는 열정을 보이며 밭에 식물들을 잔뜩 심었다. 어찌나 열심히 나무들을 관리하는지 온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다른 집 밭의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는데 유독 그의 밭만 1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모두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을 사람이 농부의 일과를 관찰하고 그 이유를 발견해냈다. 농부는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식물들을 관리했는데, 과한 열정에 성질까지 급했던 나머지 밤이면 밤마다 밭에 가서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나 하나하나 다 뽑아 뿌리를 확인하고 다시 심어놓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튜터는 덧붙였다. 오늘 하루 물 주고 내일 꽃이 피지 않았다고 우울해져서 그날 할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오늘의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말라고.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하다 보면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분명히 보일 것라고 했다.
소통의 매너를 익혀라.
토론을 할 때는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선 충돌해야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들어야 자신의 제한된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여기서 핵심은 다른 이들을, 다른 의견들을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라는 것. 그것 하나다.
고전을 그저 읽기만 하는 행위는 아랍어를 모르는 내가 아랍어 글씨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그 문장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저자는 어떤 의도로 그런 문장을 썼는지, 나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는 물론이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왜 이 문장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고전을 '읽는' 과정일 것이다.
컨퍼런스의 핵심은 학생이 이제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유명한 사람의 주장을 따오거나 어딘가에서 찾은 정보를 인용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하나의 질문을 정하고 그에 대한 답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세인트존스의 에세이다.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진행해간다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지?'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답을 찾아나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들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다양한 견해를 들으며 생각을 넓힐 수 있다. 그리고 에세이 쓰기를 통해 사방에 퍼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책의 내용 중 내가 관심 있는 한 부분을 더 깊게 파고들며 그 생각의 범위와 깊이를 넓힐 수 있게 된다.
영어 실력은 나보다 나은 원어민 친구들에게 의존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과 사고방식마저 그들에게 의존하면 나란 존재는 한없이 작아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인트존스에서 4년간 훈련한 것이 그리고 아직도 연습 중인 부분이 바로 나를 표현하는 법이다. 나 자신을 믿고, 주관을 길러내고,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걸 적절한 매너와 함께 표현하는 것이 토론 그리고 소통을 잘하기 위한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 아닐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영어로 원할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고, 토론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소통이다. 그래서 토론을 잘한다는 것은 소통을 잘한다는 뜻이고, 소통을 잘할 줄 알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영어 그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고 영어는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여 년을 다른 문화, 언어, 가치관, 가정, 교육 환경을 가지고 살아왔으니 당연히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장단점과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게나 많은 한계들이 있는데 그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과 비교하고 탓하거나 따라 하고만 있다면 인생은 불행해질 것이다. 새로운 배움은커녕 배움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될지 모른다.
"난 왜 이친구들처럼 하지 못하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하고 생각했다. "나는 왜 그들처럼 배우지 못하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내 한계를 인정하며 나를 받아들였다. 그것을 시작점으로 놓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게 해내갔더니 나만의 방법이 생겼고, 나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배움이 시작됐다.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와 정정당당히 마주하게 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학교, 그 후 한계에 도전하고, 실패 혹은 성공하기도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학교. 그래서 결국에는 학생 각자가 자기만의 배움을 찾도록 하는 학교. 그게 내가 경험한 세인트존스다. 그리고 이것이 세인트존스가 원하는 교육 목표, 스스로 학습(배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느낀 점 :
몇 년전 세인트존스 대학에 대한 EBS 다큐프라임을 보고, 그곳에 대한 열망 하나로 교재로 사용되는 고전 리스트들을 전부 조사했었다.
물론 단 한권도 읽지는 못했다. 영어 실력 및 바쁘다는 핑계를 아직 대고 있다.고전을 읽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생각에 다시 태어난다면 세인트존스를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을 보고 난 이후 세인트존스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각은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다. 내가 어릴 때 이런 곳을 몰랐던 것과 지금 도전하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 존재한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책을 보고 느낀 것은 고전을 보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토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릴 때 국어 선생님의 토론 수업에 나는 솔직히 적응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반론이 꼭 나를 무시하는 거라 여기고 발끈하기 일 수 였다. 또한 말 장난 같은 공격에 생각이 느린 나는 적합하지 않다고 적응하기 싫어했었고, 중학교까지 9년간의 교육 방식인 선생님에게 정답을 듣고 외우는 것에서 학생들끼리 답을 찾아가서 무엇을 외워야 하는지 알 수 없던 토론 수업은 내게 당시 최악이었다. 아직도 나아진 점은 전혀 없지만, 바뀐 점은 토론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올바른 지도 교수 옆에서 제대로 된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세인트존스는 정말 가고 싶은 학교다.
단순히 고전을 달달 외우고, 누군가의 고전 뜻 풀이를 읽으며 인문학이라고 외치는 요즘 분위기보다는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남과 토론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 진정 이 시대에서 요구하는 인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삶에 적용할 점 :
책만 많이 읽는 바보가 아닌, 읽고, 생각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얻은 결론에 대해 행동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한 가지 더 하자면 요즘 대화로 의견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진정 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진정한 토론으로 이끌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아직은 갈길이 많이 남은 것 같다. 난 아직도 의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업무적으로 질문을 하면 처음에는 설명을 하다가 점점 짜증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토론을 하기 위해 나부터 대화에 임하는 자세를 좀 바꿔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