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하나님과 동행하는 폭풍 속의 가정 본문
일시 : 2021.08.08
제목 : 하나님과 동행하는 폭풍 속의 가정
저자 : 러셀 무어
책 속 문구 :
내가 또 아는 것은 당신이 어떤 가정을 만들든 통제할 수 없는 폭풍 속에서 요동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결혼생활을 우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결혼생활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차세대에게 가혹하지 않고, 그들을 방임하지 않으면서 훈육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가족의 취약성을 십자가를 지는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가족 배경은 우리의 의식 속에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새겨놓는다.
성경은 우리가 주변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있는 선한 측면과 죽음의 통치를 받는 저주에 속한 측면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은 단지 동반자 관계나 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으로 연합하는 것을 가리킨다(엡5:32).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 역시 단지 인간이 번성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마5:7~11, 히12:5~11),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속한 거룩한 성(the holy city)의 어머니 된 것(갈4:26)을 반영한다.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먼저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는 한때 그들의 실망 속에서 당신을 짓눌렀던 모든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인생을 선물로 보게 된다. 퍼시는 그것이 엄청난 차이라고 말한다. '비 자살자'는 자살하지 않은 사람인 반면에 '자살 탈출자'는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죽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어서 잃을 것이 없다.
우리는 안정을 갈구한다. 우리 삶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되고, 우리의 가족이나 다른 일들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삶의 성패를 가늠하는 유일한 척도로 삼지 않는다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자유가 생기고, 자신의 연장선상에서 두거나 우상화하지 않게 된다.
머리됨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말한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남성들은 자신이 미래에 꾸릴 가족들을 어떤 영적 방향으로 이끌지 특별한 책임을 진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어덯게 사랑하시고 이끄시는가?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기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남편의 리더십은 아내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와 취향을 내려놓는 특별한 책임에 관한 것이다. 머리됨은 자신의 깨끗한 셔츠와 맛있는 식사, 성욕에 대한 필요를 아내가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을지 항상 살피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 삶은 우리가 함께하는 삶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결혼을 '한 몸'의 연합, 머리와 몸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분리된 삶이 각자의 계획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연합해 한 삶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하는 삶이다. 물론 남편이나 아내가 될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정말로 모든 것을 '완벽히 대비할' 수는 없다.
친밀함은 좋은 점이든 부족한 부분이든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고, 상대방의 약점을 나의 장점으로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친밀함은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것과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은 상대방이 하는 대로 나도 따라하는 거울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십자가에서 이뤄진 일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로 만드시고 그들의 연합 속에 성령을 주시지 않으셨느냐(개역개정-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말2:15)
한 결혼 연구자가 말했듯이, 현대의 결혼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위 고슴도치 딜레마 때문이다. 그것의 정의는 "자신이 고통당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깊은 친밀감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그런 친밀함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취약성 안에서만, 그리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림으로써만 참된 공동체를 얻는다.
아이는 아마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방황할 것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그가 선물이라는 것과 우리의 계획이 틀렸다는 것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계획이 뒤엎어질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녀석은 우리의 주일 아침을 방해했지만, 우리의 삶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가족이 우리가 실제 누구인지와 누구인 척하는지 사이의 큰 간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자네가 이야기의 줄거리를 써놓고 결말이 어떻게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네. 자네는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기를 바라겠지만, 우리 삶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어쩌면 '결말'을 못 볼 수도 있어. 이야기의 줄거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네."
느낀 점 :
가족이라는 말이 교과서에는 그리움, 사랑, 애틋함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로 가득차서 다른 가족들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알게 된 것은 교과서에 나오던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애증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관계가 가족인 것 같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밉다. 좋지만 싫다. 함께한 많은 좋은 추억이 있지만 함께한 많은 나쁜 추억이 있다.
내가 선택해서 얻은 인간 관계도 아니고 내 마음에 썩 드는 것도 아니지만 이 관계를 끊어내거나 버리기는 또 애매하다. 설령 범죄 같은 극단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라도 끊어내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세상에 소환되자마자 가장 처음 만나는 인간들이자 세상에 대한 첫 기억을 심어주며 성격 형성 및 심지어는 옳고 그름의 기준까지도 새겨 놓는 가족이란 존재들은 그 중요도가 굉장히 크다. 그렇지만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기에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서로에게 상처나 고통 등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런 경험 없이 성장할 수 있다면 축복 받았다고 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형성해준 사람들을 되돌아보니 무엇인가 이상하고 잘못 되었음을 깨닫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깨달아도 이를 벗어나는 것도 힘들다. 내 생각의 기준과 습관 등을 그들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입력은 그대로인데 그 입력에 대한 의구심을 하는 데까지는 어쩌면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 다음 단계인 무엇이 옳은 입력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는 다른 가정은 정상일까 싶어 열심히 들여다보면 그 가정도 답은 아니었다.
현재 상황이 이상하다고 깨닫는 방법은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일단 너무 힘들어야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세상에서 심어 놓은 윤리, 도덕, 등의 온갖 의무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너무 힘들어도 놓지 못하고 붙잡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마다 가족이 너무 힘든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내 생각엔 기질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법적, 생물학적, 윤리적으로 묶여 같이 살 수 밖에 없는데 세상에서 심어놓은 가족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갖게 되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며 힘듦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튼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사막에서 나침반 같은 절대 기준없이 내 몸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본들 헛짓이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학에서 어린 자아의 부모부터 학대가 성인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것을 벗어 나는 방법은 오로지 현재 내 감정은 이런 원인이 있는 것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때 정신 분석도 받아볼까 할정도로 내 성격, 감정으로 스스로가 힘들어 발버둥을 쳤었다. 내가 이상한데 어떤 것이 답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이다. 그래서 심리학 책들 읽으며 해결책을 찾아 보았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결과 밖에는 얻지 못했다. 현재의 내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현재의 내가 부정되는 것과 같았다.
스스로 겪는 고통 외에도 자녀를 가진 아버지들 중에 우리 아버지가 내게 한만큼만 하고 싶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고 싶은데 어떤 것이 좋은 아버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가 한 반대로만 한다고 좋은 아빠인가? 모든 이에게 장점만 있지도 단점만 있지도 않듯이, 이 방법도 옳은 방법은 아니다.
입력 쪽으로도 출력 쪽으로도 가족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대충 살 것이 아니라면 벗어나도록 발버둥을 죽는 날까지 멈출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빠져나오는 방법은 단 하나일 것이다. 절대적인 지표, 나침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 십자가를 우리는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내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정신 분석 받는 돈이 정말 많이 비싸기 때문에 심리학 책을 아들러부터 정신 분석학 책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뒤져보며 공부하고 무료 상담도 많이 받아보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봤다.
그 결과 원인을 찾을 수는 있어도 이것이 내게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적인 기준점이 제시되지 않고서는 이 사막에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제는 이 사막에서 나가고 싶다.
삶에 적용할 점 :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절대적인 기준점, 십자가를 바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