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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 본문

Books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

퐁~★ 2020. 12. 18. 10:56

일시 : 2020.12.18

제목 :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
저자 : 디트리히 본회퍼
책 속 문구 :
중요한 것은 아직 가지고 있는 것,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고수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억누르는 것, 이를테면 상황 전체에 앙심을 품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프리츠 로이터의 책에 이런 멋진 글이 있더군요. "인생 길은 순조롭게 무리 없이 흘러가는 법이 없다. 둑에 부딪혀 제자리를 맴돌 때도 있고, 사람들이 그 길의 맑은 물에 돌맹이를 집어 던질 때도 있다. 그런 일은 어느 인생길에나 일어난다. 인생길에 마음 써야 할 것은, 자신의 물을 맑게 하여 그 속에 하늘과 땅이 비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제힘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 아닐 수 없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자기의 일부이자 자기 삶의 일부라네. 제힘으로 "이룬" 것과 남에게 신세 진 것을 산출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며, 절망적인 시도에 지나지 않네. 사람은 자신이 이루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으로 전체를 이루네.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니네. 하지만 결국은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마10:29)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네. 제아무리 하나님과 무관해도 모든 사건은 하나님게 이르는 통로가 된다는 말이네.

사태는 언제나 극복될 수 있네. 걱정과 불안만이 사태를 미리 극도로 키울 뿐이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다른 이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그에 대한 걱정을 그를 위한 기도로 바꾸어야 하네. 

나는 시어머니나 장모가 자기 자식이 실제로 사랑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만 할 뿐 다른 모든 것은 삼가고, 특히 성격을 뜯어고치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인 됨은 다음 두 가지, 곧 기도하기와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로운 일 수행하기에만 그 본질이 있단다.

마태복음 8:17이 명시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능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으로, 자신의 수난으로 우리를 도우시네!

세상살이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드네. 이것이 바로 "회개"일세, 회개는 자신의 곤경들, 자신의 물음들, 자신의 죄들, 자신의 불안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 곧 메시아의 사건에 동참하여, 이사야 53장이 성취되게 하는 것이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할 때 -이것을 일컬어 나는 현세성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많은 과제와 문제, 성공과 실패, 경험과 속수무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네-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들고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고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게 되는 것이네. 나는 그것이 신앙이고 회개라고 생각하네. 그럴 때만 우리는 인간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네.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가 된다.

교회는 인간 공동체 생활의 세속적인 과제에 과연하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과 유익을 주면서 관여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직업인에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이 무엇이며,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인간적인 "모범"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느낀 점 :

나치 수용소에서 사형 당해 죽은 목사 본회퍼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번 죽고나면 인간으로써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본회퍼 목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목사라고 인간이기에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다. 죽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 지 궁금했다. 선한 능력으로라는 찬양이 죽기 전 부른 시라고 해서 주님에 대한 소망으로 죽었을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죽기 전 생각에 대한 글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는 삶을 살아온 본회퍼 목사는 수용소에 가기 전 머물던 감옥에서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는지 알수 있었다. 이로 인해 고난 속에서 소망을 붙잡는 게 어떤 모습일 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 적용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 난 좌절의 고통을 겪는 게 싫어 늘 실패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인지라.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들 속에서 느낀 것은 본회퍼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라는 생각이었다.
처음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본회퍼도 누군가의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이다. 부모님께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젓한 모습도 있었지만 보고 싶은 책의 리스트를 적어 보내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느꼈다.
"나는 시어머니나 장모가 자기 자식이 실제로 사랑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만 할 뿐 다른 모든 것은 삼가고, 특히 성격을 뜯어고치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편지 전반에 가족들에게 자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 이 문장은 그 당시 독일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역시 사람 사는 동네의 문제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직 가지고 있는 것,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고수하는 것뿐입니다."
또한 개인적 생각으로는 고난 속에서 소망을 붙잡고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다. 늘 상처입고 사는 삶에 대한 변명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난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는 주 얼굴 구하리"라는 찬양 가사처럼 감옥 속에서 본회퍼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지금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여전히 미래에 소망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감옥에서 나가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지만 현재 상황에 감사하며 현실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속적으로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미뤄지고 결국에는 수용소로 가게 되지만, 본회퍼는 현재 상황에 충실하며 소망을 놓지 않는다.
나같은 두부 멘탈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찬양 가사와 같은 삶을 본인이 직접 살아낸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옥중 서신에는 안부와 마음을 전하는 것도 많지만, 친구에게 신학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본회퍼의 믿음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도승처럼 세상에서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는 것과 공동체에 속해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길이라고 한다.
교회에 수없이 치여 이제는 공동체라는 말만 들어도 좀 거부감이 들지만, 이 또한 주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회퍼의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을 강조한 본회퍼는 말 그대로의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산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내 현재의 능력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거나 본회퍼를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