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본문
일시 : 2020.01.29
제목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저자 : C.S.루이스
책 속 문구 :
아무튼 논증이라는 행위는 잠자고 있는 환자의 이성을 흔들어 깨우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야. 일단 이성이 깨어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때 그때 드는 생각들이야 어떻게든 그 흐름을 비틀어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겠지만, 네 환자는 그런 사고 과정을 통해 찰나적인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서 눈을 돌려 보편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치명적인 버릇을 들이게 될 게다.
원수가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 구역질나고 하찮은 인간 버러지들을 이른바 '자유로운' 연인이자 종 -원수가 쓰는 말로 하자면 '아들'- 으로 삼겠다는 망측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두 발 달린 짐승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변태적인 관계도 서슴지 않으면서 영적 세계 전체를 모독하고 있는 형편이다. 원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인간 앞에 목표를 세워 놓고서도 단순한 감정이나 습관을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지. '제 힘으로' 해 내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게야.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위험도 따른다는 걸 명심하도록. 처음에 찾아오는 무미건조함만 성공적으로 이겨내면 인간들도 점차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되고, 우리는 그만큼 유혹하기 힘들어지니까.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원수 편에 속한 일당들은 고난이 이른바 '구원'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원수에게 독똑히 들어 알고 있거든. 그러니 전쟁이나 전염병 따위에 무너지는 믿음이라면 애당초 무너뜨리려고 수고할 가치조차 없다.
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물론 네 환자도 인내하며 원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주워 들었을 게다. 원수가 의미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 -현재의 걱정과 불안- 을 인내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원수가 원하는 건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를 설계한 후, 그것이 가장 좋은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설계했을 때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쁨으로 말이지. 원수는 결국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웃이 가진 재능을 볼 때와 똑같이, 해 뜨는 광경이나 코끼리 폭포수를 볼 때와 똑같이, 자신의 재능 또한 솔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길 바라는 거다. 원수는 그리하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피조물(자기 자신을 포함해서)은 하나같이 영광스럽고 뛰어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인간의 동물적인 자기사랑이야 그 작자도 하루빨리 없애고 싶어하지. 하지만 원수는 새로운 종류의 자기사랑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자아를 향한 사랑과 감사- 을 회복시키기 위해 장기 정책을 쓰고 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원수는 그들을 위해 영원을 예비해 두었다. 그래서 인간의 주된 관심을 영원 그 자체와 이른바 현재라는 두 가지 시점 모두에 집중시키려 들지. 현재는 시간이 영원히 가닿는 지점 아니냐. 원수는 현실을 총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인간은 현재의 순간, 오직 그 순간에만 원수와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즉 현재의 순간에만 자유와 현실성을 얻는 게야. 그렇기 때문에 원수는 인간이 계속 영원에 관심을 갖거나(이건 곧 원수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현재의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게다.
따라서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보지.
물론 원수도 인간이 미래를 생각하기 바라지. 다만 내일 실천해야 할 정의나 자비의 행동을 계획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길 바란다. 내일의 일을 계획하는 것은 오늘의 의무니까. 모든 의무가 그렇듯이, 그 재료야 미래에서 빌려오는 것이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하는 시점은 현재 아니냐.
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 이렇게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의식은 자기의 정당한 요구가 거절당했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거야. 따라서 네 환자가 삶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유도하면 할수록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횟수가 늘어날 테고, 결국에는 성질도 나빠질 게다.
원수는 인간들이 자유롭게 미래에 기여하는 바를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없는 현재' 속에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거든. 어떤 사람이 무언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것과 그 무언가를 하도록 강제로 시키는 것은 확실히 다른 일이다.
느낀 점 :
책 컨셉이 굉장히 독특하다. 선배 악마가 후배 악마에게 어떻게 하면 인간을 잘 구워 삶을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하면 인간을 지옥으로 잘 이끌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을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충격이었다. 기존에는 이런 표현을 한 책을 읽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특한 컵셉의 이 책은 문학 소설과 같은 문체로 이해하기 쉬운 말투와 재밌는 내용 전개로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내용 속에 기독교 교리에 대해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C.S.루이스라는 작가를 순결한 기독교로 맞이한 나로써는 이 작가가 나니아 연대기라는 문학 소설도 쓴 작가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했다.
악마 입장에서 글을 썼다라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신선했다. 기독교 서적 중에 악마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도 생각은 안해봤지만 악마 입장에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전략을 써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말처럼 우리도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악마에 대해 알아야 악마의 전략을 피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속 관심 환자(인간)는 다행히 지옥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다. 이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이 악마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을 굉장히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입장이라고 한번 생각하며 읽는 것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나름 자세한 설명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맥락이나 말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교리적인 부분에 있어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한번 뒤집어 생각해야 하다보니 내 삶에 적용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 교훈은 내 기준에 몇 번을 되새김질 해봐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얇은 듯 깊은 책으로 안읽어 본 사람들에게는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삶에 적용할 점 :
이 책에서 논의된 악마의 전략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