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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본문
일시 : 2019.12.27
제목 :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저자 : 유진 피터슨
책 속 문구 :
다윗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적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다운이라는 단어가 동의어였다.
그의 전 생애는 하나님과의 대면이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인간다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이다. 우리는 삶이란 하나님이 주신 커다란 선물이며,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기에 다 의미가 있으며,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기에 우리가 다 즐길 수 있으며, 모든 부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우리가 수고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다윗 이야기는 이러한 하나님 차원의 인간성,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인간성을 형성하시는 데 쓰시는 평범한 일상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 준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과 하나님이 서로 깊숙이 통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것이 인간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 이름을 가진 인간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바로 역사 속에 자신을 잠기게 하시며, 인간들이 그분의 길에 자유로이 참여하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 많은 인간됨을 그냥 우회해 가는 천국행 지름길을 취하지 않으신다. 우리 역시 그러지 말아야 한다.
몇 년 전 나는 다윗 이야기에는 단 한 번의 기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굉장히 놀랐던 적이 있다. 단 한 번도 기적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을 때 그들은 다른 정체성들과 더불어 바로 이러한 제사장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벧전2:5,9; 계1:6;5:10;20:6)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일과 예배, 예배와 일이 완전히 일치를 이룬 삶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권자시다. 인간의 일은 일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령이...기름을 부으시고...' 일은 그 기원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에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너무도 쉽사리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위험한 유혹의 장도 된다. 우리는 일을 잘 하거나 좋은 일을 할 때 정말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급기야 우리는 자신을 신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기 쉽다. 자신을 신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은 필요 없게 된다.
우리의 일이나 지위가 의롭다고 해서 우리가 의로운 것은 아니다.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의 열쇠,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사는 삶의 열쇠는, 어떤 직업이나 일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가 그 일을 왕업으로 행하느냐이다.
앞에서 살펴본 첫 번째 이야기, 즉 베들레헴을 방문한 사무엘이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새로운 왕을 선택한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또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하기에도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지만 놀랍게도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선택하고 뽑으신 존재라는 사실이었따. 두 번째 이야기에서 다윗은 사울의 궁정에서 하는 일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 삶 가운데 펼쳐지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왕업을 수행하기를 배우는 우리의 일터다. 이제 세 번째 다윗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이 골리앗에게 사로잡히는 대신 하나님께 사로잡히기를 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악에 의해 우리의 상상력이 지배당하고 우리의 사고 방식이 좌우되며 우리의 반응이 결정되는 순간, 우리는 선한 것과 참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거룩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타자성과 순전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타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비이시다.
피난처란 우리가 도망쳐 가는 장소다. 그러나 시편에서 그 단어는 "도망과 관련된 모든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뜻을 잃고, 대신 오직 여호와만을 지칭하게 되었다. 즉 인간이 단호하게 혹은 구체적인 위험과 유혹에 직면할 때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보다도 위에 계신 여호와를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당신이 여기 광야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는 당신이 스스로를 시험해 보며 자신이 얼마나 강인하고 꼿꼿한지 알아보는 시험장이 아닙니다. 광야는 당신의 삶 속에서 그리고 당신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발견하는 곳입니다.
광야를 경험할 때 우리는, 거의 언제나 거기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가장 먼저 느낀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도피 충동을 넘어 성경의 안내를 통해 광야를 기꺼이 맞이하는 자세를 갖추게 되기를 원한다.
다윗은 우리처럼 혹은 우리보다 더 나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는 사람, 결코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 다윗의 삶은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삶이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가이다.
다윗의 계획은 기도와 상담으로부터 나왔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하나님 경험을 경험하게 해준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경험한 바의 일부를 그들이 우리에게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것은 순전히 은혜였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물건을 공정하게 나누자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그들을 놀랍도록 관대한 은혜로 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서로를 놀랍도록 관대한 은혜로 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신념이었다.
다윗은 거듭해서 상실과 실망과 죽음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고난도 회피하거나 부인하거나 경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에 정면으로 대면했으며 모든 것을 놓고 기도했따. 다윗의 비탄은 다윗의 장대하고 장중한 생명력의 표출이었다.
미움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고통의 이 거대한 리듬을 어떻게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서로에게 가르치라. 그리하여 우리 삶이 그 고통들로 인해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도록 말이다. 그 고통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도록 말이다.
중독은 상실에 따르는 인격적인 문제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비인격적인 것들로 우리를 미리 채우고 마취시켜 버린다.
화자는 능숙한 솜씩로 우리로 하여금 이 이야기 중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행간을 읽는 법을 훈련받는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대부분 그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뜻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다윗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다윗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역시 그렇다.
복음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행하실 때 그리고 순종하고 기도하는 삶이 우리 몸에 배어 갈 때 우리가 전 인격으로 되어 가는 무언가다.
즉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먼저 하나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살피고 거기에 반응하는 삶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먼저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계신지 살피고 그에 대해 감사와 순종으로 사는 삶이다.
예배는 우리가 자아 집착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임재에 주목하기 위한 전략이다. 예배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주목하기 위해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장소다. 그분이 그런 시간과 장소에만 계시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자기 집착이 너무도 뿌리 깊고 고질적이어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키기 위한 정규적 시간과 장소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그분께 주목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윗은, "충만하게 살아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다"(이레나이우스)라는 것을, 하나님을 두고 염려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근엄하고 고상하게 하나님 관리 책임자 행세를 하려 들다가는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영생이란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게끔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호함은 의도적인 것인데, 이는 관대한 사랑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실한 감사의 보답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랑이 다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죄란 결국 같은 주제 -스스로 신이 되려는 것,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하려는 것,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려 드는 것- 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죄인의 자리는 책망과 정죄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리라는 소식 말이다. 복음의 초점은 고발이 아니라 인정과 초대다. 인정: 죄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깨달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초대: 예수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이 이렇게 가깝고 좋고 매혹적인 분이시라니!- 사랑과 구원을 주시는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시는 분이다. 다른 어떤 것 -밧세바를 즐기는 쾌락이나 우리아를 부리는 권력- 보다도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을 내게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중 자신의 기도로 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십 세기에 걸친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기도로 이어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곧 썩게 마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사탄을 가리켜,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분과 아무 관련이 없는 신학자 종족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느낀 점 :
다윗은 성경 속에서 사람 중에는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자주 언급도 되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세 본 것은 아니기에 내 추측에 불과하다. 개인적인 생각에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순종해서 일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여기에 더해 하나님과 함께한 일들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 많은 찬양과 경배를 드렸고 또 하나님은 다윗은 많이 이뻐하셨다고 생각된다. 이런 다윗의 일화를 다시 설명했다. 유진 피터슨 특유의 이해하기 쉽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많은 교훈을 담아서 새롭게 다윗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유진 피터슨은 여러 번 번역으로 인해 혹은 옛 시대에 맞춰진 언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던 성경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었다. 성경의 말투를 바꿨기에 이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는 조건 하에서 우리의 언어로 바꿔 내용 이해를 돕는다면 좋은 것 아닐까 싶다. 이처럼 다윗 이야기도 옛 성경 말투와 짧은 사건 설명 정도가 아닌 우리 시대에 맞춰 이야기의 행간을 포함해서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 속 행간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덕분에 알고 있던 이야기 속에도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야기 속 행간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은 유진 피터슨이 들려주는 다윗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성경에서 짤막하게 읽었던 이야기에서 내가 파악 못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재구성하여 흥미롭게 들려주는 것에 더해 우리에게 기독교인으로써의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교훈을 준다. 아마도 파악하지 못한 이야기의 행간이 재구성되면서 이야기 본연의 교훈적 특성이 살아난 것 같다. 예를 들어, 골리앗과 다윗의 전투에서 기존에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어렸을 때 자주하던 돌 던지기로 정확히 맞춰 죽였다라고 알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된 것들은 세상적으로 좋아보이는 사울의 무기가 아닌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선택한 다윗, 두려움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골리앗만을 의식한 사울의 군대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돌을 고른 다윗의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 광야는 시련의 장소이며 벗어나야 할 장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설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바는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발견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일 것이다. 그리고 나같이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만 아는 사람을 위해 우리 삶에 어떠한 적용을 해야하는 지도 말이다. 이러한 점들 또한 포함해서 작가는 나에게 다윗 이야기를 먹기 쉽게 만들어서 떠 먹여주기까지 했다. 아래 두 문장과 같이 말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바로 역사 속에 자신을 잠기게 하시며, 인간들이 그분의 길에 자유로이 참여하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 많은 인간됨을 그냥 우회해 가는 천국행 지름길을 취하지 않으신다. 우리 역시 그러지 말아야 한다."
책을 통해 그동안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다 안다고 자만에 빠져 있었던 다윗의 일화들을 내가 몰랐던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었고 성도로써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갖춰야 할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 지에 대해서 작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마치 동화를 듣는 듯한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로 인해 소설을 보는 즐거움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삶에 적용할 점 :
광야, 왕업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삶에 적용해 보자. 일단 지금은 광야에서 너무 벗어나고만 싶어 해서 그저 받아들이기에 마음에 어려움이 있지만 기도로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을 구해보자. 이 외에도 새롭게 느낀 것들에 대해 묵상을 통해 삶에 적용되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