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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성경 테마 여행 본문

Books

거침없이 빠져드는 성경 테마 여행

퐁~★ 2016. 7. 26. 00:06

일시 : 2016.07.27

제목 : 거침없이 빠져드는 성경 테마 여행

저자 : 김창대

책 속 문구 :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따르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표본이다. 이런 자를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기는 자라고 말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2~33)


당시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근동아시아의 창조관은 '자연은 여전히 신들에 의해 주관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조 이후의 시간의 흐름(역사)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그들은 원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해마다 신년 축제 때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런 제사를 통해 창조의 질서가 다시 재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창조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랐다. 이스라엘은 홍해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행위를 목격했다. 그것은 원래 창조의 반복이 아니라 역사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창조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역사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목도하고 역사에 의미를 두었다. 역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심은 결국 역사의 끝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종말론으로 이어졌다. 이 마지막 새 창조는 원래의 창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홍해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고 당시 자연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근동아시아 민족들과 달리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만나와 함께 주신 하나님의 규례는 하나님의 율법이 그 자체로 구원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기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율법을 주셨다는 점에서 율법의 행위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있음을 말해준다.


부모의 죄의 영향이 클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영향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불평하며 순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불평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불평하지 말고 묵묵히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말에 실수하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여리고성의 함락은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는 신앙생활에 불평과 원망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입술로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른 신앙인의 자세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태도이다. 이것을 깨달은 욥은 고난 중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8~10)


욥기는 참된 신앙과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중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 ~2)


진정한 신앙은 외형적인 축복에 의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로 신뢰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신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 19:26)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산상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율법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랑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도록 하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마 22:35~40)


다르게 표현한다면 예수님의 구원 공동체는 삭개오처럼 자격은 없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천국의 기쁨을 맛보았을 때 예수님을 순수하게 따르는 무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구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격은 없지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약 1:10)

그렇다고 이 비유에서 예수님이 부 자체를 비판하신 것은 아니었다. 성경은 물질적인 축복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 어리석은 부자는 그 부를 가지고 현세의 삶 만을 준비했다는 것이다.물론 그가 부를 축적하고 곡간을 지어 미래의 흉년을 대비하는 것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중략)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의 잘못은 재물로써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대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예수님이 나중 온 자들을 칭찬한 이유는 그들이 대가보다도 감사의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이란 형식적인 자세로 대가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입어야 할 예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옷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주어지는 옷임을 알 수 있다. 연합이라는 말은 로마서 6장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회애를 통해 죄와 자신에 대해 죽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옷은 회개와 옛 자아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옷이다.

바울은 이 옷을 구체적으로 빛의 갑옷(롬 13:12~14), 또는 전신갑주(엡 6장)로 표현했다. 한편 베드로는 이것을 베드로전서 1장에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요컨대 이 옷은 우리가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해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의 옷이다.

둘째로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은 성령의 옷이다.

사사기 6장 34절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군과 싸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아갈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는데,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기드온이 성령의 옷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옷을 입혔고)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삿 6:34).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복으로서 성령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예수님도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는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29)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은 선한 행실의 옷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8). 선한 행실의 옷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옷이다. 이러한 옷을 입은 자에게만 하나님의 천국 축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결혼잔치의 비유에서 교훈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책망하시며 깨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기도란 어느 순간에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어 주는 말씀이셨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고 말했다. 이 고백은 실로 그의 복음의 시작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남편은 희생과 봉사로 아내를 섬기고 아내도 남편을 복종하고 섬김으로써 피차 복종하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서로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자세는 아담의 타락을 통해 결혼생활에 들어온 잘못된 모습이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셨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올바른 지식을 가졌다면 우상의 제물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새신자들에게는 그런 지식과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위해 삼갈 것을 권면했던 것이다.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리낌과 의심 없이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그런 지식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이 있는 자는 사랑을 가지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그리스도인의 행동에서 믿음이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죄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기준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평가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자유와 함께 사랑을 동반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바울의 복음에 대한 그의 융통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때때로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여전희 구원과 영생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실제로 요한일서 수신자들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편지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영생의 확증은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간접적인 열매로 우리는 우리의 영생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해 순종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여기서 '안다'는 것은 '믿는다, 의지한다'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둘째,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자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이ㅏㄹ 2:6).

셋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요일 2:11)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증거를 통해 영생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명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느낀 점 :

이 책의 표지에 당신은 단 하루 만에 성경을 이해하게 된다라고 적혀있다. 음... 나는 못했다.

물론 성경 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해주기 때문에 이해가 쉬운 편이다. 또한 주일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금 이해하고 깨달으며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지 문구처럼 난 한번의 완독으로는 성경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이 책에서 일러준 흐름에 대해서는 이해한 것 같다. 그래도 성경에 대해 설명해 준 많은 책들 중에서 쉬운 편에 속하는 책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이 책을 통해 전체적인 이해를 하고, 성경을 다시 완독을 해보면 이전보다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한 번이 아닌 책 전체 내용에 대해 이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성경을 조금 더 가까이하여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