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플루언트 본문
일시 : 2017.01.29
제목 : 플루언트
저자 : 조승연
책 속 문구 :
이런 지독한 희생을 감수하고도 정작 통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외국인과 협상을 해야 할 때, 영어의 언어적, 비언어적 사용법을 알아두었닫가 숨겨둔 작전을 눈치껏 파악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사람, 맡은 업무에 꼭 필요한 최신 정보를 영어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료보다 빠르게 취득해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 인터넷상에 꽁짜로 뿌려놓은 하버드, MIT 등 세계 명문대학의 갖가지 최신 영어 강의를 막힘없이 듣고 지적 갈증을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막상 몇 명 없다. 청소년기를 담보 잡고 가정 경제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배운 영어치고는 가성비가 형편없으니 애석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심지어 미국으로 유학 가서 그곳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고도 영어 원서를 재미삼아 읽거나 매일 아침 영자 신문을 읽고 세계의 동향을 파악하는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
식민지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지배자에 의해 자신의 전통과 문화가 소멸되면 자신들은 영혼 안으로 '문명'이라는 것을 들이밀며 쳐들어온 지배 민족에 대한 열등감이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문명국'의 언어와 마주하게 된다. (중략) 지배당하는 민족은 자기도 모르게 '문명국'의 문화 기준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수록 현재의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 계급 상승을 꾀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식민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더 부지런히 자신만의 색채, 선조의 정글을 거부하며 스스로 하얀색(이곳은 가무잡잡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백인 행세를 한다는 뜻일 것이다)으로 바뀐다.
영어가 소위 '글로벌 언어'로 부상한 이유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리적 분포, 서로 다른 영어 사용 집단끼리의 상호 소통 가능,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언어 지형'은 언어 분포와 지리적 관계를 일컫는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지휘관이 반드시 지형부터 살피고 전략을 짜듯이 외국어 공부도 언어 지형을 살피고 배우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외국어 공부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외국인끼리 소통할 때 쓰이는 플랫폼 언어를 언어학자들 은 '랑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라고 부른다.
외국 악센트가 있는 사람은 그 나라의 매너를 조금 어겨도 용서가 되지만 그 나라 언어의 발음을 마스터 한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문화적, 관용적 태도까지 마스터 했을 것으로 보고 만약 사소한 문화적 행동이나 매너라도 어기면 무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으로 여겨 적대감을 갖게 된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언어교육학 교수 사빌-트로이케
언어학차 촘스키는 '언어 능숙도'란 한 언어의 문법으로 표현 가능한 모든 문장을 만들어낼 줄 아는 문장 생산 능력이라고 말했다. 즉 그 언어가 가진 모든 문법적으로 가능한 조합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언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힘스라는 언어학자는 촘스키의 이론만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언어 능슥도와 함께 '소통 능숙도'가 합쳐져야만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의 생각만큼 자유롭다. 문법이란 사람이 말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규제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문법에 맞추어 말해야만 통한다고 믿는 것은 문법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 못 했다는 말과 같다.
외국의 공부에서 문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릿속 살아 있는 언어의 데이터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아두는 것이다. '왜 사과가 떨어질까?'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려면 자연현상을 많이 관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영어를 잘하려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생각과 의견을 영어로 전달하는지 의문을 품고 아주 많이 관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한 민족이 갈고 닦으며 써온 언어는 깊은 감정 소통이 가능하고 형용사와 부사가 풍부하며 운율과 성어와 유머가 발달한다. 물론 한국어도 그중 하나다. 서로의 습성과 감정코드를 잘 아는 사람끼리는 "오늘 기분이 좀 거시기 혀~"라든지, "파랗다기보다는 푸리끼리하지" 같은 표현이 담고 있는 감정까지도 별 문제없이 잘 통한다. 하지만 영어처럼 몇 개의 문화와 관습이 서로 다른 민족이 한곳에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최소 소통만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는 감정의 깊이보다는 얼마나 적은 단어와 단순한 문법으로 실용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려면 사고 자체를 추상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인이 영어를 할 때 겪는 세 번째 어려움이다.
동양인은 '소'하면 소가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는 농가처럼 소가 있는 풍경을 끌고 와서 전체적인 그림을 만드는 방식으로 사고의 틀을 만든다. 그에 비해서 서양인은 머릿속에 일단 '동물'이라는 서랍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 '소', '말', '양' 같은 작은 폴더를 만든 다음, 다시 말 폴더 안에 '얼룩말', '경주마', '제주도 조랑말' 등의 태그를 붙여 집어넣는 식으로 사고한다.
영어에서는 항상 추상적인 개념으로 말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반드시 한정사라는 것을 붙여야 한다고 배웠을 텐데, some, my, any 같은 한정사는 폴더나 서랍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랍 안에 들어 있는 특정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표지가 된다. any는 서랍에서 아무것이타 툭 집어낸 것이고, some은 서랍에 든 모든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라는 뜻이다. the는 폴더 안에 '내가 지정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태그다. 머리가 이미 서랍과 폴더로 정리된 서양인은 실존하는 사물을 지칭하려면 일단 서랍장을 열고 구체적으로 말하려는 것을 고르는 사고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any, my, which, these, the, a 같은 단어가 반드시 붙어 나온다.
이에 비해 영어 동사는 방향성이 확실하다. 행동은 동사를 가운데에 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움직이지, 그 반대 방향으로 갈 수 없다. 이런 고지식함이 한국인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네 번째 걸림돌이다.
그러나 문법은 문장을 맞다, 틀리다 판명하는 고정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사람이 실제로 말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렇다고 보면 위 세 문장은 분명히 한국인이 사용하고 있고 서로 알아 듣는 데 별 문제가 없으니 왜 저렇게 말해도 소통이 가능한지를 고민해야 제대로 된 문법 공부일 것이다.
이유는 영어의 주어 개념은 한국어의 주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영문법학자들은 영어를 비롯한 서양 언어의 주어를 '에이전시agency'라는 다른 용어로 설명한다. 에이전시는 '그 동사를 행하는 자'를 뜻한다. 즉 영어 문장에서 주어는 반드시 담배를 피우는 주체여야 하고 담배를 피우는 주체는 실제로 입에 담배를 무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주어는 무엇의 지휘 하에 놓일까? 바로 동사의 지휘 아래에 놓인다. 영어에서 동사를 verb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In principio erat Verbum)"라는 문장에서 '말씀'으로 쓰인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을 정도로 라틴어 시절부터 그 파워를 인정받았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유럽 언어에서 주어는 동사에게 갈라져 나왔으며, 없어도 될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미했다. 영어의 첫 단어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장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며 겪는 네 번째 어려움의 실체다.
이제 영어를 배울 때 한국인이 겪는 다섯 가지 큰 어려움 중 마지막 것을 짚어 보자. 영어는 단어가 문장의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모양이 살짝 휘어져서 모양이 변한다는 것이다.
자, 지금까지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큰 걸림돌 5가지를 분석해 보았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첫째, 한국인과 미국인은 생각의 순서가 반대다. 미국인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한국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으로 생각한다. 둘째, 한국어에 비해서 영어는 빌트인된 뉘앙스 숫자가 너무나 적어서 단어를 꼬아 모자라는 표현을 보충한다. 셋째, 한국어 단어는 직관적으로 영어 단어는 추상적이다. 넷째, 영어는 주어의 선택이 제한적이고 동사가 방향을 결정한다. 다섯째, 영어 단어는 같은 단어라 해도 그 모양이 여러 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와 쉽게 친근해지려면 주어+동사만으로 문장을 만들면서 동사를 다양하게 바꿔보는 연습에 매진하는 과정을 절대 건너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영어의 기본 문형이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동사의 숫자가 영어 실력 그 자체에기 때문이다. 영어는 동사의 다양한 사용법을 모르면 제한된 표현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
한국인의 사고 패턴을 머릿속에 그냥 둔 채로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어를 잘하려면 머릿속 한 부분에 한국인의 어순과 반대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영어의 순서대로 결을 잡도록 뇌를 조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 기초 과정이 바로 주어+동사만의 간단한 문장을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올 때까지 다양하게 만들어보는 훈련인 것이다. 어떤 문장을 만들 때 일단 적절한 동사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머리가 훈련되면 입에 윤활유를 바른 듯 '유창성'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어+동사구의 구조가 입에 붙기 시작하면 동사를 두 개 이상 겹치는 방법으로 훈련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어의 특징은 단어를 짝짝 풀로 붙여서 새 단어도 만들고 품사를 바꾸기도 해서 마치 베이너판처럼 자세히 보면 얇은 판자를 여러 겹 풀로 붙인 자국이 보이지만 대충 보면 그저 하나의 두꺼운 판자로 보이는 것이다.
반면에 영어는 '분석어'라고 하는데 analysis는 고대 그리스어로 '나사를 풀다, 해체하다'라는 의미다. 풀로 붙이는 한국어와 반대로 각 요소가 따로따로 해체되어 눈에 다 드러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사의 중첩을 관통할 수 있는 눈은 영어의 심층 논리 구조의 결에 따라 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논리를 관통하지 못하면 수천 개의 문형을 외워 두어도 창의적으로 그때그때 만들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쓰는 언어 행위에 절대로 참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어 문법을 배우면서 심층 구조는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새로운 문장을 접할 때마다 항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해보면 된다.
1. 그 문장의 표면적 의미는 무엇인가?
2. 그 문장의 관용적 용도는 무엇인가?
3. 왜 그렇게 쓰이는가?
이렇게 문장의 요구에 맞춰서 단어를 휠 줄 알고 필요하면 없는 단어를 만들어 쓸 줄 아는 것을 언어학자들은 언어를 '생산적으로 마스터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언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문장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짧아지는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영어는 분석어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가 문장 요소를 분석하는 것, 즉 떼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이런 복잡한 문장을 접하면 문장을 분해해서 순식간에 머릿속에 정리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략) 양파 껍질을 하나 벗겨내듯 문장의 입체성을 3차원적으로 분해하는 안목과 사고 패턴을 기르는 것이 독해와 영작의 핵심 노하우다. 이것을 잘 익혀두면 영어 원서 읽는 속도가 열배, 백배, 천배 빨라지는 것을 금세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책 읽는 속도가 사람이 말하는 속도와 같아지면 영어를 듣는 귀가 뚫릴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을 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배열되어 있는 단어의 의미를 그냥 외울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여보내 다시 합쳐서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원래의 몽실몽실한 느낌을 복원해 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문장 안에서 보는 순간 '문맥상의 감을 아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의 언어 공부 지향점일 것이다.
언어 공부의 만고불변의 진리는 명작, 특히 시를 많이 낭독하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왜 영시를 많이 낭송해 봐야 하는 지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만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첫째, 시어는 그 언어의 원초적 소리를 귀에 잘 담을 수 있게 해주어 특율의 음감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영시를 낭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영어 특유의 표현법을 저절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는 비유적 표현이 많으며,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는 때와 장소와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다. 영어의 비유적 표현 역시 우리와 크게 달라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문학의 기본적인 특징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영어는 특정한 그림을 예로 들어서 전체 개념을 그리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다. 한국 가요의 가사나 대화에서는 장면을 설명한 후 그 장면의 의미나 교훈을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에서는 그냥 이미지만 가지고 느낌을 표현한 후 다른 문장으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영어는 한국어에 비해 이미지뿐만 아니라 반어법도 많이 사용한다. 영어에는 반어법의 종류가 많으며, 평소에 문학을 읽지 않으면 어떤 것이 반어법인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같은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끼리는 청자는 화자가 던진 말의 빈 행간을 축적된 문화 지식을 동원해서 채워 나가며 언어 행위를 완성한다. (중략) 사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담기에 불완전한 도구다. 듣는 사람이 행간을 채워주지 못하면 소통이 막힌다. 이것은 언어철학자 폴 그라이스가 제안한 '의미론적 상호협동이론'이다. (중략) 그래서 만일 독자가 대학 졸업자이고 직장이나 비즈니스상으로 미국 대학 졸업자 수준의 영어를 구하해야 한다면 그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필수적으로 읽는 고전을 모두 읽지는 못하더라도 대략 그들이 무슨 고전을 읽고 그 안에서 어떤 문장을 즐겨 인용하며, 그것을 대체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정도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외국어 공부는 시작하자마자 원서부터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영어 공부 중에 접하는 예문이 대부분 문법에 꼭 맞추어 쓴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영미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자연어'에 노출되는 횟수나 기회가 너무 적다. 그래서 시나 소설을 많이 읽으면 그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시나 소설은 학생들 가르치려고 일부러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문법에 맞춘 문장과 생활에서 쓰는 자연어 사이의 주객전도 문제를 막아준다. 이것이 영어를 배우면서 즉시 원서 읽기를 시작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예문을 해석하는 연습문제 푸는 것이 영어 공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문화 독해력 갖추기와 예문 풀기를 따로 해서 같은 일을 두 번 할 필요 없이 소설이나 시를 예문으로 삼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원서를 읽으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문법책과 사전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면 그 과정에서 익힌 영어 표현이 목록을 만들어 외운 것보다 머리에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원서를 읽는다고 해서 그 지식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원서를 4단계로 나누어서 읽었다. 첫 번째 단계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던 낭독이다. 두 번째 단계는 책 속의 상황을 상상으로 그리거나 노트 위에 그림으로 그려, 책 내용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남도록 두뇌를 훈련시켰다. (중략) 이렇게 그림으로 문장을 해석하고 나서 고전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때도 우리가 스토리의 교훈을 도출하는 방식이 우리의 문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략) 우리와 문화권이 다른 서양 고전을 그들의 문화에 입각해서 읽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그 나라 평론가들이 쓴 주석을 책과 같이 읽는 것이 좋다. (중략) 고전 읽기의 마지막 4단계는 내가 읽었던 고전이 다른 책이나 영화, 광고, 카피 등에 인용된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다.
느낀 점 :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지만, 세상 모든 표현을 외우는 건 무식한 방법이라고 외국인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방식이 있을 거라고 그 방법을 찾아 공부하겠다는 미명하에 몇 십년째 영포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저자의 언어학적인 분석과 외국인이 영어를 말하는 데 생각하는 과정 등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아마 저자도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며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영어에 있어서의 동사의 중요성, 방향성, 사물에 대한 추상 개념의 차이를 설명함으로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서 한층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줬다. 또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언어를 익히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적인 예문이 아닌 소설이나 시에 나오는 실제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장을 공부하는 것이 그들과 대화를 더 잘하는 방법이고, 그들의 고전 소설이나 글들을 배움으로 그들 문화에 대한 문화적 지식이 있어야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친절한 저자의 공부 방법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로는 영포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효과적인 공부 방법에 대한 제시일 뿐 이 방법을 통해서 영어를 내 것으로 하는 과정은 어쩌면 당연히 해야하는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영어라는 언어와 한국어가 얼마나 다른 지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어떤 공부 방식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외국인들과 대화를 함에 용이한지 알 수있었다. 끝으로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만큼 많은 노력을 효과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한 전문 도서가 아니기에 부족한 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점은 영어 소리가 언어로 인식이 잘 안되는, 한 마디로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외국어 듣기 방법에 대한 저자의 공부법 소개 가 없는 게 조금 아쉽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런 것들을 메꾸고 있기에 외국어 공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 보는 게 좋은 책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영어를 잘하고 싶은 열망을 이용해서, 영포자의 길에서 좀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