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어떻게 살 것인가 본문
일시 : 2017.09.09
제목 :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 유시민
책 속 문구 :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 존엄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옮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일만하는 사람, 권력을 좇는 사람, 신을 섬기는 사람 등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우리는 각자 정체성이 다른 자아들이다.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알베르 카뮈의 인생을 생각하며 자문해본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은 내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나는 어떤 놀이에서 즐거움을 얻고 살았으며 어떤 놀이를 더 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가?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식이 만족스러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엔가 속해 잇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손잡으려는 의지를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이 지레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산 것은 아니었던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삶에 대한 번민과 회의가 찾아드는 것이리라.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몰두할 수 있는 놀이에 빠져들고 싶다.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일하고 놀고 사랑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그래야 인생의 마지막 날에도 내 삶에 대해 황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청년들은 죽음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아직은 자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임박한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내팽개처두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훌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삶과 함께 죽음도 알아야 한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내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품,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도덕적 차원을 가진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만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인간다움, 존엄성이 그런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필수 조건은 자유의지이다. 살든 죽든,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무엇이든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삶에 주는 기쁨과 의미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살아 있는 순간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는가?' 라몬 삼페드로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사업을 하든, 기업이나 정부에서 조직 생활을 하든,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얻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언제 이런 흐뭇함을 느끼게 되는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인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면서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꿈이나 희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소망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충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인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느낀 점 :
정치인이자 지식인으로써 알려진 유시민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다. 작가 유시민의 글은 처음 읽어보는 데 생각보다 단백하고 담담한 말투다. 이런 말투로 본인이 생각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필요한 신념과 직업 등을 내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내 경우에도 내 스스로 신념을 세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이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은 욕구만 있다. 한 번 사는 내 삶에게는 비겁한 변명이겠다만, 내 상황이 여의치 않고 또 내 성격이 그리 부지런 하지 못하게 태어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책에서는 스스로 선택한 신념과 일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세뇌되거나 남들의 의견에 묻혀 흘러가지 않고, 내 스스로 선택한 신념과 생각을 가지고, 내가 하고자 선택한 일에 시간을 쏟으며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작가 유시민은 본인 생각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노력하며 산,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살아오신 것 같다. 이런 분이 말을 하니 더 무게감 있게 다가 온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 내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정리된 생각하나 온전히 없는 내가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크게 꿈꾸지 못하는 나를 알기에 삶의 안정적인 측면, 즉 서울에 내가 살 집 구하기나 노후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 등의 요새 내 머리 속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들을 내려 놓고 생각했다. 이 때 든 생각은 평생 무엇인가를 배우고, 남과 나누고 즐기며,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현실 문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꿈은 꾸고 싶어서 생각해봤다.
삶에 적용할 점 :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