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Pong`s Life ★

새 사람 (존 스토트의 로마서 5-8장 강해) 본문

Books

새 사람 (존 스토트의 로마서 5-8장 강해)

퐁~★ 2021. 11. 2. 14:28

일시 : 2021.11.01

제목 : 새 사람 (존 스토트의 로마서 5-8장 강해)
저자 : 존 스토트
책 속 문구 :
우리의 칭의의 열매는 화평과 은혜와 영광입니다. 즉,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 (우리가 그 안에 서 있는) 은혜, (우리가 바라는) 영광입니다.
이를 보다 세밀하게 고찰해 보면, 이 구절들은 우리 구원의 세 가지 시제 또는 세 가지 단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화평'은 칭의의 즉각적인 결과에 대해 말해 줍니다. (중략)
둘째, '우리가 그 안에 서 있는 이 은혜'는 칭의의 지속적인 결과에 대해 말해 줍니다. (중략)
셋째,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영광'은 칭의의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 말해 줍니다. (중략)

그렇다면 고난이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략)
1단계.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 (중략)
2단계.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 (중략)
3단계. 단련된 인격은 소망을 낳는다. (중략)
 
모든 사람이 아담과 같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망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사단의 유혹에 반박할 수 있는 확고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위대한 교리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단의 교활한 유혹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이며,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내적으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의 개요
첫재,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1~6절). (중략)
둘째, 사도는 죄와 사망이라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의 책임을 율법에 돌리며, 율법을 완전히 폐기하려는 자들의 부당한 비판에 대항해 율법을 변호합니다(7~13절). (중략)
셋째, 사도는 신자의 내적인 갈등과 승리의 비결을 기술합니다(7:14~8:4). (중략)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는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육신의 힘과 교활함 때문에 우리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고 주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때문에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율법의 의, 곧 하나님의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함의 수단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5-8장의 핵심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새로운 삶, 즉 완전히 '새로운 생명'(6:4)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새롭게 된 사람, 곧 새 사람입니다. 그리고 각 장은 이 정체성에 또 다른 특징을 더해 줍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립니다. (중략)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그분과 연합했습니다. (중략)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두려운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중략)
넷째, 동시에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느낀 점 :
로마서에는 복음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말도 어렵지만, 내용은 더 어렵다. 읽기야 짧아서 쉽지만 한 문장, 한 단어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런 강해집이나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 알고 읽어도 이 뜻이 이 뜻인가 싶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부분은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한 내용이 가슴에 와닿지 못한다는 점, 그래서 내가 변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디가올 기쁨에 대한 확신으로 현재 삶의 고통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아직 근심 걱정 가득하고 아픔이 두려운 것보면 지식으로 머리에만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고로 나는 거듭나셨냐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확신은 없지만, 있다는 증거들은 널려 있다는 것도 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적 침체]에 나오는 말처럼, 내 상태는 눈 먼 소경이 앞은 보이나 흐릿하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다.

로마서의 구절들이 내 머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동화되어야 할텐데 싶지만, 이 모든 것을 처절한 고통이 없이 알고 싶다는 욕심 또한 내려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나를 미리 예정하시고 초대하신 그분께서 내 마음에 확신까지도 적절한 그분의 때에 성취하실 줄을 그저 믿어야지.

 

삶에 적용할 점 :

로마서를 다시 한번 읽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