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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바이올렛 아워 본문

Books

바이올렛 아워

퐁~★ 2016. 10. 26. 14:24

일시 : 2016.10.24

제목 : 바이올렛 아워

저자 : 케이티 로이프

책 속 문구 : 

[프로이트]

문득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죽었을 때 우리는 사고나 질병, 감염, 고령 등 사망 원인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습관이 있다. 죽음을 필연이 아닌 우연한 사건으로 끌어내리려는 본성을 무심코 드러내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한 단편 소설의 초고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병문안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매일 병원에 들르는 짬을 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닥친 불행이 결코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즉 우리 자신을 건강한 사람, 지금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 또 앞으로도 병에 걸리지 않을 사람의 범주에 단호하고 확실하게 끼워 넣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병석에서 시름시름 앓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합당한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하나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몸이 약해지며 정신까지 마비되지 않는 것입니다.

맥베스 왕이 말한 것처럼 갑옷을 입고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요컨대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을 아름답고 유혹적이라 생각했다.

"죽음의 충동이 어떤 억제도 받지 않은 채 내적으로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프로이트가 삶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안나에게 "어떤 결과가 닥치든 삶을 대담하게 똑바로 직시하는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전 손택] 

그녀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아들에게 해롭다는 걸 인정할 정도로 자기 분석적이지만 그런 행동을 중단할 만큼 현명하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이 손택의 진짜 모습 아닐까? 그녀의 말처럼 우리가 죽음을 외면할 수 있고, 죽음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죽음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대한 선택권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멋진가!


[존 업다이크]

"지금 다시 그 암울한 순간이 밀려온다면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명철한 깨달음과 맑은 공기를 주기 위해 

카를 바르트를 읽고, 다른 남자들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 여자와 함께 있으면 어디가 되었든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길모퉁이에 서 있기만 해도

나는 결코 죽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다."


또한 우리가 뭔가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즐겁게 보이는 삶의 사회적인 부분과 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부분이 뜻밖의 방법으로 결함되기 때문이라고도 알려 주었다.


불륜이 관련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한다는 생각은 표면적으로는 터무니없이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생각에도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예컨대 당신이 남에게 드러내지 않은 비밀스러운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반듯한 삶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든 초월하거나 기만한 것이다. 당신 삶의 터전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뭔가를 다시 시작한 것이며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 이상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는 셈이다.


"그는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채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결국 업다이크의 관점에서 삶은 성적인 욕망의 추구인 동시에 갈등이다.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전율, 즉 우리를 다른 상태로 옮겨 가는 생정적 불안감이 곧 삶이다. 반면에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죽음이다.


회고록 <자의식>에서 업다이크는 이런 관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맹목적인 유아기부터 시작해 생산하고 생식하는 시기를 거쳐, 생물학적 본능 법칙과 절제된 미덕이란 인위적 계율에 따라 영면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햇살을 받으며 걷는 것 이상을 바란다면 이기적이고 터무니없이 자기중심적인 것 아닐까?"

업다이크는 죽음에 대해 갖는 환상과 불안을 항상 글로 표현했다. 죽음에 관한 '절제된 미덕'을 주제로 꾸준히 글을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영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영면을 부정하고 기만하며 비난한다. 영면에 대해 강박적으로 저항하는 모습도 보인다. 햇살을 받으며 걷는 것 이상을 기대하고, 사후 세계에서는 더 오래도록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딜런 토마스]

여하튼 토머스가 질병의 극적인 효과, 즉 질병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관심과 질병을 핑계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 것만은 분명했다.


2년전 토머스는 생일을 앞두고 <그의 생일에 부치는 시>라는 시를 쓰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본다. 그가 사랑한 것과 미워한 것, 또 그가 이제껏 경험하고 행한 모든 것에서 죽음이란 논리적 과정을 보게 된다. 죽음이 몸을 감춘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광적인 전쟁이 일어난다면 모두가 죽음의 덫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하고, 환히 빛나는 지구를 찬양하며, 멀리 떨어져서도 사랑을 나눈다. 피할 수 없는 까닭에 서글픈 목표를 기꺼운 마음으로 추구하듯이 그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왜 그는 끔찍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과 하느님을 찬양할까?"


미국에 도착했을 때 토머스는 자신의 몸 상태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기를 자학적으로 바랐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토머스의 지나친 병적인 두려움이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 질주하게 만든 것이다.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자살로 삶을 끝내기 10년 전 잡지 <하퍼스>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절망'이란 단어는 최근 남용되어 진부해졌지만 원래는 무척 진지한 단어다. 나는 지금도 이 단어를 정말 진지하게 사용한다. 절망은 사람들이 두려움이나 고뇌라 칭하는 것에 가깝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절망은 내가 왜소하고 약하며 이기적인 데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고 싶은 심정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절망은 갑판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이다."


[모리스 센닥]

그래서 센닥은 자신이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동화 작가이기보다는 어린이의 진실을 말하는 작가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놀이와 공포의 중간쯤에 존재한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다루되 그것을 흥미진진하고 지극히 공상적인 공간에서 웃음거리로 만든다. 요컨대 그에게 두려움은 묵살하고 떨쳐 내야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닥치며 마음껏 즐겨야 하는 것이었다.


[에필로그]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적잖은 죽음을 경험했지만 마음이 흔들리거나 절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죽음을 통해 활력을 얻었습니다. 또 죽음이 내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 말에서 나는 수전 손택을 떠올렸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손택은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들떴고, 죽음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환상적인 경험, 활력을 얻는 것, 정당성의 인정 등은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듣게 되리라 기대하기는 힘든 표현들이었다.


현실에서는 우리에게 죽음의 선택권이 없다. 죽음은 우아하게 맞이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최선인 듯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든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위안거리를 만들어 내는 거겠지요."

내가 줄곧 찾아 헤맸지만 아직 이르지 못한 결론이었다. 그래,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위안거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더라도 '죽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으리라.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회할 일을 덜 만들지 않겠는가. 자, 당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느낀 점 :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매 순간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며 살아간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점을 자주 느낄 때가 죽기 전에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내 주변에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나 조차도 죽기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만 있지 이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가끔 이렇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을 읽는 순간만 제외하면 생각도 잘 안한다. 영원한 삶을 사는 우리가 아니기에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이 다른 죽음에 대한 책들과 다른 점은 유명인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죽어갔는 지 조사한 것이다. 프로이트, 수전 손택, 존 업다이크, 딜런 토마스, 모리스 센닥 등에 대해 조사를 했고, 각 사람들의 저술과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살아갔는 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한 사람, 죽음에 대해 순응하고 받아들인 사람, 죽음에 대해 역으로 달려간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모두들 죽음을 실재로 느끼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죽음을 느끼고 실제로 내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닌 곧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험한 경우 이전보다 본인의 삶을 살아 가는 것 혹은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한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아직 죽음에 대한 경험이 주변의 누군가가 돌아가신 것 밖에 없는, 즉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체험해 본적이 없는 내가 갖은 죽음에 대한 느낌은 영화 퍼시잭슨과 괴물의 바다에서 그로버가 말한 것처럼 죽음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닌 죽는 과정이 무서운 것이 제일 크다. 책에서도 언뜻 나오지만 많은 이들이 자연사를 꿈꾼다. 잠자다가 죽는 것 혹은 뇌암 등으로 인해 무고통으로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을 바란다는 것은 누구나 죽음 자체보단 죽는 과정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이루고 싶은 꿈, 현재 삶의 만족도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쓰고 있는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든, 세상에서 잊어지지 않기 위해서든 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죽어가는 과정보단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다.

죽음을 경험할 뻔한 사람들은 대체로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고 싶은 지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에 대해 집중해서 노력한다고 한다. 나처럼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도 깨달음이 없다보니, 이들과 같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지,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일생에 거쳐 내가 진정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 당장 결론이 나지 못했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인생 수업이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 체험 등 죽음에 대한 책을 처음 접했을 때보단 조금은 나아졌음 하는 소망이 있다. 조금씩 나아간다면 먹고 사는 문제에만 치중하는 내가 아닌,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이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바쁘다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간을 내서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본 서평은 거인의 서재(https://www.facebook.com/groups/gshoulder/)에서 책 주셔서 감사히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