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마흔에게 본문
일시 : 2018.11.18
제목 : 마흔에게
저자 : 기시미 이치로
책 속 문구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리고 과거의 일도, 방금 있었던 일마저 잊어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가치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건전한 우월성의 추구'에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감점법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하나씩 더해가는 가점법으로 평가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타자에게 도움이 되는 '공헌감'은 행복의 초석이며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산다'는 건 아직 이 세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행복을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건강과 행복은 말하자면 공기와 같은 겁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들 덕에 살 수 있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그때까지 행복을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도, 불행하다고 느끼던 사람도 병에 걸리면 어제까지 행복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됩니다.
에네르게이아를 비유하자면 춤입니다. 춤 출때는 순간순간이 즐겁습니다. 도중에 멈추더라도 괜찮습니다. 춤이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추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겁니다.
두 번째, 결정은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세 번째, 자기 중심성에서의 탈피
'타자에게 평가와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과 부모와의 과제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모는 자신의 이상과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다른 각도에 초점을 맞추고 과거를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을 탓하며 후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부모의 행복과 불행은 아이에게 전염됩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간병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자립한 어른일 것.' '생산성을 따지는 사고에서 벗어날 것.' '하지 못하는 일에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
인간은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변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변한다'라고 결심하는 것이며, '변하려는 용기'를 갖는 겁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은 인간관계 속에서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이 타자에게 도움되지 않으면 살아가는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타자 공헌'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만이 인간관계 속에 들어갈 용기가 생긴다고 지적한 아들러는 "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는 '나'의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할 때뿐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가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생각할 수 있느냐입니다. '우리'를 주어로 생각하고 살 수 있으면 '우리를 위해 나는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가 주어인 발상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이렇게 살아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그것만으로 서로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부부 관계는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느낀 점 :
마흔을 몇 해 앞두고 있는 나에게는 마흔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서른 살이 되고 처음 느낀 감정이 '이런 건 내가 생각한 서른의 삶이 아니야'라고 느낀 순간부터 마흔에는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살고 싶었다. 생떽쥐베리의 말처럼 마흔에 내 얼굴은 내가 만든 얼굴이라는 이야기에도 공감해서 더 많이 웃고 지내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지금 사는 삶은 전혀 내가 예상한 방향은 아니지만 마흔에 해야할 일들에 대해 미리 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마흔에 관련된 책들을 좀 찾아서 보고 있다. 20대에 알아야 할 몇 가지 시리즈나 30대에 알아야 할 이야기 시리즈 등과 같은 것을 이 시기가 지나고 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한 것들에서 나아가 마흔이 되기 전에 미리 보면 좀 도움이 될까 싶었던 마음도 있던 것 같다. 이 책은 특별히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왜 한국어 제목이 마흔에게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이 책은 마흔이라는 나이보다는 늙어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아들러 심리학을 적용하여 위로와 생각할 것들,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마흔 살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내가 늙어갈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중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하나는 스스로를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인지하라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인맥 관리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사람을 사람이 아닌 이익 추구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생각할 때는 남들과 비교해 생산성을 기준으로 비교하며 자존감을 스스로 깍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잘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한다. 아이에게 생산성이 전혀 없지만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한다. 이를 자신에게 적용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일을 하면서는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나 일을 더 잘하거나 등으로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 평가 받곤 한다. 은퇴하고 나면 가장 큰 딜레마가 일을 하지 않기에 일하지 않는 내 모습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다고들 한다. 나 스스로에게 자신의 생산성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어른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린 부분이다. 어릴 때는 나이가 먹으면 그저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나이가 먹어도 정신 세계는 그대로기 때문에 흔히 성숙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어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문득 나이 많은 사람은 나보다 더 성숙했을 것이라 잠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기대에 못미치는 나이 드신 분을 보면 실망한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어른에 대한 기준을 정확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주로 나를 기준으로 판단했었다. 저자는 어른의 세 가지 요소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자기 중심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알고, 주체 의식을 갖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며,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유아기적 생각에서 벗어나 타인과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남과 나를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어렵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우치고,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써 나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온전히 인정하며, 내 욕구를 실현해 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과 비교하며 나를 너무 깍아내려서도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나를 너무 높이 세워서도 안되는 것이다. 나에게 어른의 길은 너무 멀다.
마지막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와 남의 과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구분을 못해서거나 책임감, 동정심, 남이 내 뜻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바램 등으로 과제 분리를 잘 하지 못한다. 자식의 미래를 대신 결정해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다. 이 외에도 참 많은 부분에서 남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대신 걱정하고 고민하는 행동들을 하곤 한다. 아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우리를 위해 나는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말들을 보면 단편적으로 아들러는 전체주의를 의도하는 심리학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들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 아들러는 개인을 소중히 생각하기에 우리를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타자에게 느끼는 공헌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을 통해서 남을 돕는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다시 위로, 기쁨, 행복 등을 얻기도 한다. 이런 인간에게 개인만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러는 타인과 나 사이에 과제를 분리해서 내 과제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늙어감을 통해 우리는 신체 부자유도 느껴야 하고, 젊은 사람들보다 생산성이 감소되었음을 실감해야 한다. 이는 늙어 간다는 것이 내가 곧 쓸모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생산성이 아닌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 남에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너무 잃지 말고, 너무 쳐지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의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어떤 분은 다 늙어서 이게 무슨 소용이니라고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환갑이라 시간이 많으니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두 어르신이 80까지 산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산성은 두 분다 없을 것이다. 다만 다 늙어서 할게 무엇이 있냐며 하루하루 언제 죽나를 기다리며 사는 삶과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즐겁게 사는 삶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이 주변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평균 연령이 80이 넘어가는 이 시대에 모두가 즐겁고 기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나 자신을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로 사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