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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노르웨이의 숲 본문

Books

노르웨이의 숲

퐁~★ 2018. 10. 17. 17:57

일시 : 2018.10.17

제목 :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책 속 문구 :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충분하지 않아와 아주 부족해의 중간쯤. 늘 목이 말랐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듬뿍 사랑받고 싶었어. 이제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정말 잘 먹었어, 할 정도로. 한번이라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 버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만 하고, 늘 그런 식이었거든."


내가 아는 거라고는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내 젊음의 기능 일부가 완전하고도 영원히 망가져 버린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뚜렷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지, 그것은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노르웨이의 숲]

"이 노래를 들으면 때로 나는 정말 슬퍼져.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치 깊은 숲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춥고 외롭고, 그리고 캄캄한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아.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으면 레이코 씨는 절대로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아." 나오코가 말했다.


나도 그런 사람을 몇이나 봤어. 처음에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아주 어려운 곡을 악보만 한 번 척 보고는 그냥 ㅇ쳐 버리는 사람이 있어. 그것도 꽤 괜찮은 수준으로. 보는 사람이 압도다앟고 말아. 난 도저히 상대도 안 된다고. 그렇지만 그것뿌니양. 그들은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왜 안 나아갈까? 노력하지 않거든. 노력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 버리는 거야. 약간 재능이 있어 어릴 적부터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꽤 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칭찬하게 되고, 노력 같은 거 별것도 아니라 생각해 버리는 거지. 다른 아이가 삼 주는 걸리는 곡을 그 반 정도 시간에 완성해 버려. 그러면 선생이 이 애는 재능이 있다고 다음으로 넘어가. 그 곡도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빨리 해치워 버려. 또 다음 곡으로 넘어가. 그래서 지적받고 꾸중 듣는 것도 모르고 인격 형성에 필요한 어떤 요소를 빠뜨린 채 앞으로 가버리는 거야. 이건 비극이야. 하긴 나한테도 어느 정도 그런 요소가 있었지만, 다행히 난 선생님이 아주 엄격한 사람이라서 이 정도로 그친 거지."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


고뇌하지 마요. 가만 내버려 두어도 흘러가야 할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 때는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니. 좀 잘난 체를 할게요. 와타나베도 인생의 그런 모습을 이제 슬슬 배울 때가 되었어요. 당신은 때로 인생을 너무 자기 방식에만 맞추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정신 병원에 들어가는 게 싫다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요. 나처럼 무력하고 불완전한 여자도 때로는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정말이에요. 이거! 그러니 더 많이많이 행복해져요.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요.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체념하듯 몸에 익혔다. 또는 체념했다고 믿었다. 그건 바로 이런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느낀 점 :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이 낯설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수능 전에 열심히 읽었던 기억으로 이 작가의 소설을 한번 읽어볼까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저자 약력에 상실의 시대가 없는 걸 보고 인터넷 검색해보고 알았다. 같은 소설임을.


다행인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기에 다시 한번 재밌게 읽었다. 소설 전체가 박진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차분함과 분위기에 대한 묘사 속에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잔잔하게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일본 영화 한편을 본 기분이다.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일본 풍경에 대한 나만의 그림을 갖을 수 있었다. 더불어 어렸던 청춘의 풋풋한 사랑의 추억이자 그 속에 나는 절망과 좌절, 기쁨과 환희가 반복되었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안타깝게도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인 탓에 혼자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바라볼 자신이 없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안만들고 평생 살겠다는 생각도 지켜지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다. 주인공도 실망하기 싫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사람을 쳐내지 않는다. 그리곤 다시 가까워 진다.


"충분하지 않아와 아주 부족해의 중간쯤. 늘 목이 말랐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듬뿍 사랑받고 싶었어. 이제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정말 잘 먹었어, 할 정도로. 한번이라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 버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만 하고, 늘 그런 식이었거든."


이 문장을 읽기 전에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모르고 살아온 데는 잘은 모르지만 당연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도 미도리처럼 정말 내가 이제 그만 좀 사랑해줘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어떻게 하면 사랑받아 볼 수 있는 지 생각했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만 가능하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원없이 사랑을 주고, 누군가에 사랑을 원없이 받아보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하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주인공은 하나 뿐인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상실을 경험한다. 죽음은 내 삶의 끝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중간에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순간을 겪는다고 해도 다음 상실이 아프지 않거나 덜 아픈 것은 아니다. 하나의 상실을 겪고 이를 이겨내가는 과정에서 뭔가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왜냐면 죽음에 우리가 대항할 수도 없고, 모든 경험이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매번 너무 아프다. 매번 슬픔 속에서 빠져 나오기가 너무 힘이 든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해도 우리는 상실을 경험해야만 한다. 사랑이 변하거나 상황이 변해서 헤어질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상실은 사랑했던 만큼 아프다. 그리고 아픔이 반복된다고 아픔이 약해지거나 견디기 편해지는 일 따윈 없다. 매번 마치 처음 겪는 상실인듯 아프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랑을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나오코가 죽고 나서 방황하던 시기에 만난 아저씨의 선의도 사랑에 한 종류일 것이고, 다른 여자로 인해 방황하는 주인공을 아무말 없이 몇 달 이상을 기다려 주는 미도리도 사랑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인공도 아저씨와 미도리가 있기에 나오코를 상실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실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해도 우리는 지금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다. 모든 것을 알고도,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내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