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s Life ★
숨결이 바람될 때 본문
일시 : 2017.11.19
제목 : 숨결이 바람될 때
저자 : 폴 칼라니티
책 속 문구 :
나는 톨스토이가 묘사한 정형화된 이미지의 의사,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르는 그 무게를 못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폴,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이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죽음에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딜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져드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되거기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혹은 가능하다 해도 확실히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데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이 책이 출판된다고 해서 그의 죽음이 준 상실감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데에서 의미를 발견했고, 이 책에도 그렇게 썼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느낀 점 :
죽음이란 것이 우리 삶에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닌데 자꾸 잊고 산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생각하긴 하지만 이것도 그 때 뿐이다. 내게 얼마나 삶이 남아 있는 지 안다면 내게 이렇게 방탕하게 내게 남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갈지 의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먼저 죽음의 문턱에서 몸의 고통을 감수하고 글을 쓴 것에 대한 경외를 표한다.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유명한 철학자에게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배운 인문학적인 사람이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전문의가 되려는 즈음에 본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동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감동적인 에세이를 만들어 냈다. 이 책은 문학을 전공한 신경외과 의사기이 때문에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얼핏 보면 사랑을 남기고 간 [그 청년 바보 의사]와 비슷하게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의사의 죽기 전 에세이지만 이 책은 의사로서 바라본 죽음 그리고 또 시한부 환자가 되어 바라본 죽음을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고찰을 통해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의사로서 매일 같이 환자들이 죽거나 살게 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 조금은 죽음에 무뎌질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환자의 삶이 변화 되는 것에 막중한 책임감과 우월 의식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쉴 새 없이 새로운 환자들의 병마와 함께 싸워가며 병을 치료하다 보니 환자에게 기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 병은 수 많은 환자들이 갖고 있는 비슷한 병 중의 하나가 아닌 우리 삶을 흔들고 꿈이나 희망,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게 되는 큰 문제이다. 이런 병 앞에서 환자 개개인은 모두가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고 무작정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며 의사에 대한 신뢰가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다. 이 순간에 바쁜 일상에 지쳐 내뱉은 의사의 짜증 섞인 말 한 마디가 환자에겐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비슷한 병을 수 없이 바라본 의사의 지나치리만큼 냉혹한 판단이 환자의 존엄성이나 꿈을 잃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병을 치료하는 기술자인 의사보다는 옆에서 같이 병을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 아닐까. 환자에 대한 배려와 환자의 삶에 대한 배려가 의사에게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을 저자의 의사로서의 경험, 환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죽음이 얼마나 남은 지 모르는 시한부 환자로써 삶을 계획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내게 남은 삶이 많지 않은 데 얼마나 남았는 지는 모른다는 답변 혹은 실제로는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열심히 하면 살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이 내 삶을 정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줄 것인가. 우선 내 가족들이 내가 없어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고, 내 남은 삶에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해 더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의사라도 모든 상황을 아는 것은 아니기에 정확히 예측해 줄 수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환자의 상황에 따라 남은 삶을 정리할 기회를 없애 버리는 것은 조금 잔인하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에 대한 배려로 "80%의 치사율입니다."와 같은 말 대신 "20%의 생존률입니다."라는 말로 희망을 줘야 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이것은 희망고문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배려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일 같다. 진정한 환자에 대한 배려는 그 사람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할 것이다.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를 배려해 저자의 주치의가 치료 후 손을 정교하게 쓸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주장한 것처럼 말이다.
삶에 적용할 점 :
내 삶이 얼마 남지 않게 될 경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또 언제가 될지 모를 죽음 앞에서 인생을 충실히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또 저자만큼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