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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본문

Books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퐁~★ 2022. 9. 21. 20:55

일시 : 2022.09.21
제목 :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저자 : 아브라함 카이퍼
책 속 문구 : 
그러므로 이런 국가의 주권은 개인을 보호하고 가시적인 삶의 영역들에서 상호 정당한 관계를 규정하는 권세로서, 명령권과 강제력으로 이 모든 영역 위에 탁월한 것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영역 안에서 이 주권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다른 권위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권위는 국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으로 국가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인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영역들의 상호 관계를 올바르게 규정함에 있어 국가의 주권은 자신의 뜻이나 선택을 행동지침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국가는 이런 영역들의 존재 목적과 성격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뜻에 매여있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고 메마른 학문이 아니라, 확고한 원리, 심오한 통찰, 선명한 판단이며, 한 마디로 보다 강한 힘으로 우리 인간 삶 가운데 그리고 인간 삶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에 대한 저항력으로서 거룩한 사고의 힘입니다.

자유가 국가권력에 의해 각 영역의 경계선에서 위협을 받듯이 죄로 인해 각각의 영역 내부에서도 최소한 동일한 정도로 위협을 받습니다.

학문의 진정한 모습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학문을 빛의 천사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미치광이, 바보, 술주정뱅이에게서 그의 인간적 존엄을 강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명한 의식의 부재가 아니겠습니까? 단지 자신에 의해서만 아니라 우리 자신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선명한 의식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참된 학문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확고하게 견지하는 바, 이 학문은 여전히 "자기 영역의 주권자"이며, 국가의 보호나 교회의 감독 하에서 그 성격이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학문은 고유한 삶의 영역을 형성하는데 거기서 진리는 주권자이며, 학문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그 삶의 법칙을 위해하거나 침해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믿음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든지, 당신의 자아로부터 출발하든지, 혹은 당신의 이상을 확실히 붙들든지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죄인 혹은 발전하는 자연존재의 이중적 모습을 지닌 인간은 모든 학과, 모든 학문, 그리고 모든 연구자에게 "생각하는 주체"로서 혹은 "생각하는 객체"로서 돌아옵니다. 아, 우리의 사고 세계 가운데 그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들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

카이퍼가 개교 연설을 통해 힘주어 외친 영역주권 사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세속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고백하며, 그 고백을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 살아내라는 적극적인 요청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회생활 전반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의 적극적 참여와 행동을 요구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천지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오직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주권은 반드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정되어야 합니다. 즉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예술, 교육, 스포츠 등 각 영역이 지닌 고유한 주권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으며, 다만 각 영역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심지어 국가라 할지라도 다른 영역의 고유한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단지 각 영역들이 마치 톱니바퀴들이 서로 연계되어 잘 돌아가도록 지도하고 돕는 역할을 지닐 뿐입니다.

'국가'는 각각의 영역이 갖는 주권을 침범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영역들이 서로 공의의 경계선 안에서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도록 조정해 주어야 하며, 개인의 삶이 집단에 의해 억압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면서 순수성을 유지하되, 자신의 수위성을 학문에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허용된 고유한 영역주권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학문'은 국가와 교회의 보호나 후원을 받지만 그것들로부터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되며, 오직 진리를 주권자로 삼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선명한 의식을 추구해야 하고, 국가에 기여하는 동시에 교회를 자신의 시녀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느낀 점 :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떠오르는 말들은 대체로 착하게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서다. 즉 희생하면서 사는 삶만을 강조하는 교회의 말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사랑의 통로가 된다는 건 나도 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고, 내 안에 기쁨이 차올라서 이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일 텐데 내 현실이 지옥인데 무조건 참고 남에게 잘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는 좀 아리송하다.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하루 종일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 뿐일까?
인간이 잘못되게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예술부터 분노라는 우리의 감정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이러한 나의 어릴 적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 문장 및 이 책에서 나온 영역 주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의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예술, 교육, 스포츠 등 각 영역이 지닌 고유한 주권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으며, 다만 각 영역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심지어 국가라 할지라도 다른 영역의 고유한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단지 각 영역들이 마치 톱니바퀴들이 서로 연계되어 잘 돌아가도록 지도하고 돕는 역할을 지닐 뿐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지, 어느 한 분야가 무시되선 안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속한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회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되려 가리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다.
어디가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 솔직한 마음에 기독교인을 욕하게 하는 것 같아서 먼저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다시 한번 반성하며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주시길 간구해 본다.

 

삶에 적용할 점 :

내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구하며, 최선을 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