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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칼빈주의 강연 본문

Books

칼빈주의 강연

퐁~★ 2022. 11. 24. 20:03

일시 : 2022.11.24
제목 : 칼빈주의 강연
저자 : 아브라함 카이퍼
책 속 문구: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통일성을 느끼며 동시에 우리 개인의 삶도 통일성을 이룹니다.

칼빈주의는 이교처럼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슬람교처럼 하나님을 피조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고, 로마교처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매개적 공동체를 두지 않습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 위엄 가운데 모든 피조물 위에 높이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령을 통해 피조물과 직접 교제하신다는 숭고한 사상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정에 대한 칼빈주의의 고백의 중심이자 핵심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신분계층과 민족들 출신의 남녀들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영원한 존재의 위엄과 직접 교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마음속에 나타난 이런 하나님의 사역 덕택에 당시에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면전에 서야 한다는 것이 칼빈주의의 근본 사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과 세상의 삶 가운데 두신 보화들을 모든 영역에서 발전시키는 한편, 세상의 맹독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더욱 고상하고 진지한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는 종교의 네 가지 커다란 문제에서 매번 특징적인 교의로 그러한 선택을 하는데, 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가장 만족시키며, 가장 풍요로운 발전에 이르도록 합니다. 
첫째, 종교는 공리주의적 혹은 행복주의적 의미에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주권이라는 칼빈주의 교의입니다.
둘째, 종교에서 하나님과 영혼 사이에는 그 어떤 중보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영혼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 교리입니다.
셋째, 종교는 부분적이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이것이 일반 은총이라는 교의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우리의 죄악된 상태를 정상적이라고 하지 않고 구원이 필요한 상태임을 역설합니다. 그 해답은 중생과 성경의 필요성이라는 이중적 교의 속에 들어 있습니다.

칼뱅에게 교회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각 개인 자체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모인 것입니다. 자신들이 좋다고 여겨 모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모인 것입니다. 신자들의 보편적 제사장직은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경건한 사람들이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집단으로 모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교회와 공통점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비가시적 참된 교회는 반드시 지상 교회 안에 비춰지고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의 연합체가 있을 뿐 교회가 아닙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의 지체들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께 연합된 자들로만 구성되는데, 그들은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말씀으로 살고, 그의 규례들을 지킵니다. 따라서 교회는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권징을 시행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면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는 이 땅의 교회 정치를 결정합니다. 이 통치는 하늘로부터,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그는 자신이 교회에 준 말씀을 통해, 그리고 교회 지체들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더 나아가 신자들 사이에 계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칼빈주의의 근본원리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모든 피조된 생명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파생된 주권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 주권은 삼중적인데, 국가, 사회, 그리고 교회에서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정부의 주권은 하나님을 위하여 동일한 신적 기원에서 비롯된 다른 주권 앞에 제한됩니다.

교회는 자신의 영역에서 추방하기 원하는 사람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용납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되지만, 그 어떤 국가의 시민도 양심에 따라 떠나기를 원하는 교회 안에 머물도록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반면에 정부는 이런 점에서 자신의 교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스스로 실천해야 하고, 양심의 자유를 각 사람에게 속하는 원초적 권리로서 모든 시민에게 허용해야 합니다.

(일반 은총) 이 은혜는 죄의 핵심을 전적으로 죽이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통찰이 야생 동물의 격분을 억제하듯이 이 은혜는 죄의 영향력을 억제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죄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으며,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신앙의 확실성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증거가 없는 사람은 성경을 믿을 수 없습니다.

느낀 점 : 

사실 칼빈주의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고 또 관심이 그다지 없었다.
무슨 주의, 무슨 주의를 나누며 뭐하는 집단인지도 모를 종파를 만들고 또 사람을 나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예수님도 한 분이신데, 도대체 믿는 방법이라는 것들이 수 십가지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들을 보기 좋다 생각하지 않다보니 점점 무관심해진 것 같다.
단지 영역 주권에 대해 쓴 사람이 써서 읽어 봤을 뿐이라는 게 이 책을 집은 동기다.

이런 저런 감정은 있지만 진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처지라 그 동안 오해로 가득했던 내 신앙의 실타래들을 푸는 과정 중,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이 무조건 교회에 와서 헌금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는 것만이 아닌 내가 속한 세상의 삶에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안된다. 이마저도 구체적으로 이해했다기 보다 세상도, 심지어는 이 주식 시장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잘못 이용하는 것이 문제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구나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다.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과정에 대해, 영역 주권이라는 개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에 종속된 나의 삶은 교회의 영역에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닌 내 모든 삶 속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것인데, 이걸 못깨닫고 살았구나 싶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단 한 사실을 붙잡고 수일 간의 묵상으로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도 있다는 데,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난 정말 하나를 알려주면 반도 모르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더듬고 있는 많은 모습 중에 칼빈주의와 많이 닮아 있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난 아직 내가 머리로 믿는 게 몸의 행실로 나타내지 못하는 죄를 사랑하는 족속이라 내가 잘났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가꾸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직접 만나 주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 존재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세상 속 내가 속한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현재까지의 내 생각엔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에 목표 지점을 두고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뭐 이마저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거라 확신이 아닌 잠정적이긴 하다.

 

삶에 적용할 점 :

현재의 삶을 지켜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삶에서,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 가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