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Pong`s Life ★

순례자의 귀향 본문

Books

순례자의 귀향

퐁~★ 2022. 10. 14. 14:43

일시 : 2022.10.14
제목 : 순례자의 귀향
저자 : C.S.루이스
책 속 문구:
"이런 걸 귀납법이라고 한다네. 젊은 친구, 가설은 누적 과정을 거쳐 확립되는 걸세. 쉽게 말하면, 동일한 추측을 충분히 자주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추측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된다, 이걸세."

"세상에,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한쪽으로 정해 버리면 안돼요. 불확실한 상태로 지낼 줄 모르세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장난감을 잘 가지고 노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거요.

이와 같은 사상들 앞에서 전통 도덕은 흔들린다.
욕망 없이는 동기를 찾을 수 없고, 욕망을 따르자니 도덕이 설 자리가 없다.
양심은 더 이상 존을 이끌지 못한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신물이 나고 지친 그는 결국 절망에 빠져 도덕적 질문을 포기한다.

'중요한 것은 지성이 비유에 사로잡히지 않게 지키는 거야. 비유는 비유일 뿐이란 걸 명심해야 해.'

그들의 첫 걸음은 언제나 그림에서 생겨난 갈망이라네. 그 갈망에는 천 가지 잘못된 오솔길이 숨겨져 있지만 한 가지 올바른 길도 있지. 스토아 철학, 금욕주의, 엄숙주의, 사실주의, 고전주의 등 어떤 구실로건 그 갈망을 깍아내리는 이들은 본인이 앋든 모르든 원수의 편이라네."

"하지만... 하지만 어르신,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지주님이 제게 실제로 원하시는 것이 제게 갈망하도록 가르치신 것과 완전히 다를까 봐 두렵습니다."
"지주님의 의도는 자네 생각과 아주 다를 걸세.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의 갈망이 짐작하는 갈망의 대상은 언제나 그 갈망에 부적당하네. 손에 넣기 전에는 자네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를 걸세."

죽음을 마주한 존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죽는 것뿐임을 배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네 주인이 아니다. 나는 너의 하인이다. 죽음의 치료법은 죽는 것. 죽는 행위로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를 돌려 받는다. 마더 커크에게 내려가라."

"자기를 보존하려는 발버둥을 그만두기만 하면 돼요."

옷 벗는 일이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너덜너덜한데다가 퓨리타니아 협곡에 이를 때까지 거친 모든 곳에서 묻은 때와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에 벗을 때 아팠고 살갗이 약간 벗겨지기도 했다.

 

느낀 점 :

책의 외형 만으로는 이전의 어려운 변증의 글이 아닌 연금술사 같이 읽기 편한,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성장하는 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다른 점은 여행이 진행될 수록 여타 소설과는 달리 주인공과 함께 하는 내 머리도 복잡해졌고, 결국 못따라가 작가의 힌트를 보고서야 이해하는 페이지가 생길 정도로 힘들게 읽었다.
차라리 대놓고 변증 글이 편할까 싶은 정도였지만, 뒤돌아보면 순례자가 걸어간 길 자체가 나또한 걷고 있는 길인 것 같았다. 난 아직 계곡에 내려가는 길인 것 같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페이지 위에 있는 작가의 간단 요약이 이게 뭐지 싶었다. 그렇지만 내용이 깊어질 수록 이게 없이는 이해가 도무지 않되던 곳들도 있었으니 처음에 웃기다 생각했던 내 모습이 우스웠다.
퓨리타니아에서 시작했다는 점과 이상을 쫓으며 세상에서 접하는 철학과 사상들이 결국에는 내 모습과 비슷해서 어렵지만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모태 신앙으로 시작해서 딱히 겉으로 볼 때 길에서 벗어난 적은 없겠지만, 내적으로는 학교나 세상 속에서 접하는 그리스 철학, 과학, 프로이트 등에 의해 현재 내적 갈등을 겪었고 다행인 점은 현실에 놀기 바빠서 및 게으른 성격 탓에 결론 내리기를 지속적으로 유예하는 중에 이런 앞서간 자들의 길을 보여주는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이게 없이 나 혼자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더 안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분명 안좋은 방향이었을 것 같긴 하다.

현재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끝에서, 순례자는 사로 잡혔다. 어떤 다른 표현보다 사로 잡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사로 잡힌 이가 부럽다. 나도 언제가 내 굳은 목을 꺽고 사로 잡히는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한 번도 방황해 본적 없이 순순히 살아온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겪은 경험으로 더 탄탄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필수불가결함을 이성적으로는 늘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고통없이 깔끔하게 나를 사로 잡아주셨으면 하고 언제나 소망하고 있다. 아니면 작은 고통에 큰 깨달음이라도 얻게 되길.

 

삶에 적용할 점 :

치열한 고민 끝엔 언제나. 중간에 멈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