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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본문

Books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퐁~★ 2023. 9. 8. 16:48

일시 : 2023.07.06
제목 :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저자 : 천종호
책 속 문구 :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예수님이 이스라엘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천하 만민을 위한 메이사이심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그런데 사탄과의 시험을 통해서 예수님이 선포하시고자 하신 것은 자신의 신적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는 0.1%도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 조건은 첫째,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을 갖추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과 교제할 성품과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은 거룩함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반드시 거룩함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지녀야 합니다. 결국 인간에게 창조 본연이란 생명(영생)을 얻어 최고신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안식일의 핵심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과 나아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성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드러나는 명령입니다.

진리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자신의 의지와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순전하고 진실하게 기다리면 우리는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영혼은 믿음 인격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천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몸을 씻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의 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령님이 베푸시는 세례로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고, 인류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죄'(원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개인은 죽음이라는 악의 지배를 받아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러한 죄(자범죄)는 일상 속에서 저지를 때마다 회개하며 용서받아야 합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발을 씻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듭남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수술하시고 새 생명을, 새로운 기질을 불어 넣"으시는 것이빈다.

죄 사함을 주는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으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거듭날 수 없다는 뜻이고, 어떻게 거듭나는지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의 정체성의 두 가지 핵심은 '속량(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모두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과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내놓아야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내보여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중략)
한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고 천국 문을 통과한 이후에는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 깊이 새겨진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팔복을 누리는 사람이란 '타락 이전의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새 창조의 본연을 보여 주신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원죄로 인한 타락 이전의 인간 본연을 넘어 새 창조 본연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복입니다.

믿음은 시공간 세계에서 영원 세계인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 시민이라면 우리에게는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증거가 없는 사람은 믿음의 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참 믿음이라면 당연히 내적, 외적 증거를 통한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이러한 증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아브라함, 라합 등과 같이 참 믿음의 증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의 문맥을 보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황금률로도 적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것과 찾는 것을 얻고, 막힌 문이 열리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헌금을 하는 등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이를 통해 회복되는 창조 및 새 창조 본연의 인격과 성품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과 성품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책 속 문구 :
책을 순서대로 읽으면, 마가복음 순서에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사건들을 중심으로 묵상을 해볼 수 있다.
언뜻 보이는 법조인인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들이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한 발견도 할 수 있었다.
이래서 남들과 묵상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행위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의 묵상을 읽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 스스로 성경을 읽고 생각해보는 것을 거의하지 않는 내 모습을 되돌아 봤다.

이 책을 덮고 기억에 남는 부분, 몇 군데를 남겨본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예수님이 이스라엘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천하 만민을 위한 메이사이심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었다. 주변에 이 부분을 읽자마자 혹시 이런 생각해봤는지, 이런 점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 지 물어봤다. 정말 내 주변에서는 다들 아무도 이런 생각을 이전에 하지 못했었고, 나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또 옹졸한 위안을 삼기도 했다.
내 생각은 "정말 단편적으로 먼 곳에서도 찾아와 경배드렸구나. 우와."하고 끝났었다. 정말 하나님의 계획은 태초에 이미 완성되어 그 뒤로는 실행만 된 것 같다.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단편적인 신앙으로 교회에 출석을 하던 시절, 천국 소망으로 산다는 말에 이 땅에서의 삶은 모조리 부정하고 오직 죽음 이후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이해한 적이 있었다. 믿음만 있으면 천국가는데 굳이 믿음이 굳건할 때 죽는 게 최선이 아닌가란 생각도 했다.정말 최근에서야 하나님은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라는 싶어서, 정말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삶을 부정하고 죽음 이후의 천국에 가는 것만을 소망하며 살기를 바라시는 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성경을 읽은 적이 있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사랑하고 이 삶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이 삶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삶을 통해 믿음이 증명될 것이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과 성품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오직 은혜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 따위가 창조주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그저 은혜를 주셨음에 감사하면 되는 줄 안적도 있었다. 근래에서야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듣고, 이런 은혜를 베푸신데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 돌리기를 바라셔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 문장을 읽었다. 나는 내 힘으로는 남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이 넣어주시는 힘으로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데 내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내가 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과 성품을 닮아감으로 드러나게 되면, 이 것을 타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도 생길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행한 일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 돌리게 되면, 인간의 창조 목적과도 부합하는 것 같다.

내 삶을 통해서, 내 믿음이 드러나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 돌려야 하는데...
오늘도 난 회사에서 남의 흉을 보고, 내게 주어진 일을 주께 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보여준 오늘의 삶이 남을 넘어뜨린 것은 아닐까 싶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죄스럽다. 큰일이다.

삶에 적용할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