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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s Life ★

내가 자랑하는 복음 본문

Books

내가 자랑하는 복음

퐁~★ 2022. 3. 7. 13:44

일시 : 2022.03.07

제목 : 내가 자랑하는 복음
저자 : 마틴 로이드 존스

책 속 문구 : 
우리 모두의 문제는 우리 안에 비합리적인 요소가 있고, 그것은 우리의 이성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선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악을 행합니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모순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역사와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초한 실수와 곤경 가운데서 만들어 가는 역사와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최고의 기능을 하는 영혼이 생명력을 잃고 그 기능을 멈췄습니다. 바울은 에배소서 2:1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죽어 균형감각을 잃은 것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혼과 이성적인 영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정욕과 욕망의 지배를 받을 뿐입니다.

오히려 저는 "종말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자. 나는 책임감 있는 존재다. 나를 지으신 분 앞에서 그분이 내게 주신 능력과 재능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라고 말하겠습니다. 저의 삶 전체는, 제가 이 문제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내가 믿는 그분 자신"입니다.

현대인은 "대중매체에 의해 조작되는" 인간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인생의 온갖 실패와 불행의 진정한 원인이자 궁극적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첫 번째 요인은, 이른바 인간의 유한성 때문입니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두 번째 요인은, 삶의 무의미함과 무목적성입니다.
여기에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세 번째 요인인 불안감이 더해집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첫 번째 결과는 언제나 약함입니다.
둘째로, 두려움은 언제나 이기심으로 이어집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분별없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두려움이 초래하는 또 다른 결과는 현실도피입니다.

죽음은 집행유예의 시간, 시험과 기회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영원한 운명과 상태를 결정짓게 되며,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느낀 점 :

디모데는 믿음 안에서 두려움에 쉽게 넘어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보다 훨씬 강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을 그조차도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니 인간이란 존재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이 아닐까 싶다. 이를 통해 위로를 받으면서도 또 어떻게 이를 넘어서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럴 수록 더욱 복음을 붙잡고 일어서라고 한다. 힘들수록 더욱 강력하게 하나님을 붙잡는 것 말고 인간에게 다른 길은 없다. 너무 막막해서 엎드려 하나님께 비는 것 밖에 모를 때 대체로 엎드리는 것보면 말이다.

"죽음 뒤의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현재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왔다. 죽음 뒤의 삶을 살기 위해 현재는 그저 준비되는 삶이라면 현재는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지금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고만 여겼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삶을 살게 하신대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현재의 삶을 그저 외면하며 버티는 마음으로 살게 하셨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영원한 운명과 상태를 결정짓게 되며,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어쩌면 내 질문은 내 삶에 기쁨이 가득차야 하는 이유를 얻기 위한, 즉 내 중심의 질문에서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내 삶이 진짜 버티라고 주신거라고 해도 한낱 나따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삶에서 죄를 사랑하는 우리의 삶을 바꿀 기회를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진정 스스로를 죄인으로 느끼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까 싶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인생의 온갖 실패와 불행의 진정한 원인이자 궁극적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두려움이 많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보니 변수나 불확실성에 대해 혐오감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오다보니 남이 옆에서 지켜볼 때보단 스스로 상처를 내며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엄청 심한 사람들만큼 난리날 정도는 아니다. 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삶을 살다보니 말이다. 이런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 지에 대해서, 그리고 두려움이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 상당히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결론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정녕 믿는 자에게 두려움이 있을 것인가란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머리로 아는 것이 몸으로 알고 이것이 삶에 열매로 맺히기를 기도할 뿐이고 말이다.

솔직히 난 내게 시간이 한 백년 쯤 주어진다고 해도 내가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되거나 믿음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될 자신이 없다. 다행인 것은 인간 중에 어떤 이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저 믿기만 하면 해주시겠다고 하는데 그 '그저' 믿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믿으면 주신다는데 믿는 것도 하게 해주시라는 염치 없는 부탁을 계속 드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세월이 많이 주어진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할 수가 없다.
게다가 영원의 시간, 시간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래야 할 수도 없고 사후의 무한한 시간으로 생각을 조금 바꿔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때문일까 죽음 뒤에 부귀영화보다 지금 찰나의 평안에 더 관심이 가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죽은 후의 영광보다 지금의 무언가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영원한 순간, 시간이 없어진 그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을까.
이러나 저러나 지금 주어진 이 삶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주님이 주신 복음을 붙잡아 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간구하자. 믿음도 확신도. 이 방법 밖에는 아직 모르겠으니 이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