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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

퐁~★ 2022. 7. 22. 19:54

일시 : 2022.07.22

제목 : 개인기도

저자 : C.S.루이스

책 속 문구 : 

완벽학 교회 예배는 그 형식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예배, 그래서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예배일거야.

 

기성품 기도문이 내게 주는 유익은 첫째, '건전한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준다는 거야.

둘째, 기도문은 내게 "마땅히 기도할 바"를 되새기게 해 준다네.

끝으로, 기성품 기도문은 의식의 요소를 제공하네.

 

우리는 (가끔이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더 없는 근접성과 동시에 무한한 거리를 인식해야 하네.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아신다는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지만, 우리가 알려지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지.

 

가만히 있다가 알려지는 대신,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며 보시라고 자신을 내놓는 걸세.

 

내가 행위 대상인 동시에 행위 주체가 되어야 하니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구하게 된다네.

 

진정한 창조주께서 어째서 '일반법칙'으로 일하셔야 한단 말인가? 블레이크 William Blake는 "일반화하는 것은 천치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네. 그의 표현이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일반화하는 것이 유한한 정신의 특성임에는 분명하네. 우리의 지성은 일반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작동하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임시변통으로 무한히 밝은 시력을 훼손하셔야 할 이유가 뭔가?

 

하나님이 기도를 제정하신 목적 중 하나는 그분이 세상만사를 국가처럼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처럼 창조하심을 증언하기 위함인지도 모르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세상의 창조에 나름대로 참여하거나 (기도를 통해)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그 안에서 목적이자 수단이 되겠지.

 

신비주의자의 항해가 적법하고 안전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항해자의 동기가 순수하고 항해기술이 뛰어나고, 끈기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네.

 

기도하는 순간은, 이 '실제 세계'와 '실제 자아'가 결코 근본적인 실재가 아님을 깨닫고 깨우치는 -혹은 깨우칠 조건을 제공하는- 순간이네.

 

기도는 공간과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네. 또한 기도는 객체를 대하는 주체로서의 내 피조물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아니야. 기도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박하지.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데 있네. 그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네. 내 앞의 상황 자체에서 매 순간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이 일어날 수 있거든. 지금 이곳이 떨기나무가 불타는 거룩한 땅이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그날 내가 배웠던 건 우리의 감각에 와 닿는 즐거움들이 영광의 광선이라는, 훨씬 더 신비로운 교리였네. 영광이 우리의 의지나 이해력에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그것을 선함, 진리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네. 하지만 우리의 감각과 기분에 닿을 때 그것을 즐거움이라 부르지.

 

가장 단순한 순종의 행동이 내가 지금까지 묘사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경배라는 점을 내가 잊고 있다고 생각지는 말게(순종이 제사보다 낫네).

 

가장 높은 수준의 참회기도란 자신의 행동으로 깨어져 버린, 무한히 가치 있고 전폭적인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되겠지.

 

느낀 점 :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 내 삶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이 점에 대해서는 내게 있어 늘 어려운 부분이었다. 물론 C.S.루이스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알게 된 것 같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께서 죄에 무너지기 쉬운 인간 따위를 만드셔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 인간이 파악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C.S.루이스의 생각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점에서 작은 위로와 나처럼 어려운 건 다른 사람의 몫인 양 전혀 생각 없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깊이 있게 해본 C.S.루이스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아신다는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지만, 우리가 알려지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지."
"가만히 있다가 알려지는 대신,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며 보시라고 자신을 내놓는 걸세."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미세 혈관의 구조까지도 다 아시는 분께 인간 중에서 나라는 특정 인물을 드러내고 봐달라고 말씀 드리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전지하시다는 말에 80억 인구 개개인의 머리털까지 아신다는 점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80억 인구 중 눈에 보이지 않는 나같은 인간의 내밀한 사정도 다 아시기에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 나를 드러내고 내 생각을 말씀 드리는 기도라는 과정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생각 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나같은 사람에게 아직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과정 중에 내가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단계로 여겨지는 게 현재 내 수준에 더 맞는 것 같다.
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 못듣기에 혼자 떠들고 있지만, 게으르게 읽는 성경 속에서, 시끄러운 지하철에서 듣는 하루 QT 말씀 속에서도 계속 말씀하고 계실텐데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하고 내 말만 하는 나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언젠가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거기에 기도로 응답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대화가 이루어지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연하게도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아무 생각없이 게으른 나를 환골탈태 시켜주셔야 가능할 것이다. 즉 오직 은혜로만 가능할 것이다.

 

삶에 적용할 점 :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기도하라.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