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Me Before You

퐁~★ 2016. 6. 10. 16:14

영화 [Me Before You]를 보고 나서...


본 글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본 계기]

불현듯 누군가의 오전에 비는 시간에 맞춰 영화를 보자는 이야기에 평소 영화를 좋아하기에 따라갔다. 어디서 많이 들은 제목인데 싶었다. 아마 요새 유행하는 옛날 영화 다시 나오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굉장히 유명한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일단 영화 보기 전에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보는 걸 선호한다. 예상치 못한 감동의 영화에 대한 기대와 나의 부족한 지식과 상상력으로 즐거움을 미리 감소시키고 싶지는 않아서다. 한국말로 하면, "너 이전에 나" 이 말이 어떤 뜻일지 생각하면서 감상했다. 단순히 가치 중심의 이미에서 너보다는 나를 더 많이 생각한다는 의미로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 끝나고 의미를 검색해보니 어떤 사람에게는 당신이 있기 전의 나라는 뜻으로도 해설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내가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봤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우선 내가 영화 보기 전에 생각했던 의미는 너보다는 나를 위한 삶이라는 의미로 감상했기에 이를 위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루이자]

영화에는 항상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루이자가 있다. 그리고 루이자의 희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루이자의 가족들이 있다. 그래도 사랑이 가득한 집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골 변두리에서는 성공한 편에 속하지만 항상 자신만을 생각하는 루이자의 남자 친구가 있다. 사실 이름도 생각 안난다. 특별히 자신의 성공을 위해 루이자에게 희생을 부탁하는 동생도 있다. 이처럼 주인공 루이자의 삶에는 루이자 자신보다는 항상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 그리고 이 배려와 희생이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 삶이 루이자와 같은 상황 속에 있다면 굉장히 우울하고 답답할 것 같지만, 정작 루이자 본인은 순수한 시골 처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밝고, 건강하고, 잘 웃고, 정도 많고, 나는 싫어하지만 남에 대한 오지랖도 좀 있는 성격인 것 같다. 그 무엇보다 굉장히 순수하고 착하다. 같이 본 분들 중 어떤 분 의견으로는 여자가 그리 수다스럽고, 잘 웃고 그러면 싫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내 생각에 남자들을 떠나서 잘 웃고, 밝은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윌]

여기에 부자집 도련님에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생활을 누리다가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척수를 다쳐서 남의 도움 없이는 오직 말하고 손가락 한 두개 움직이는게 다인 윌의 인생이 루이자와 만난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온 몸이 망가지고, 눈만 움직일 수 있어도 살아야 한다고 굉장히 쉽게들 이야기 한다. 물론 나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온 몸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난 그런 상황에도 살아야 한다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나도 아직 그 상황은 안 겪어봤고, 하나님이 주신 삶이기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처음에는 바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할 것 같다. 이 정도의 시련을 감당할 자신이 내게는 없기에 항상 기도 드리지만 말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움직일 수 없고, 씻는 거 먹는거 옷 입는 거 이 모든 걸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윌처럼 부자라서 평생 먹고 사는 문제 혹은 가족에게 경제적인 짐이 되는 문제를 완전히 배제 가능하다고 해도, 상상만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삶을 당연히 유지해야하는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루이자와 윌의 만남]

루이자와 윌의 만남은 간병인과 환자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고, 일정 부분 영화 상의 전개도 일반적인 로맨틱 코메디와 같이 힘든 부분을 만남으로 승화하여 즐거움을 선사하는 듯 보인다. 항상 나보단 남을 위한 사람을 살아온 루이자는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윌을 위해서도 자신보다 더 아끼며 윌을 대해준다. 윌 뿐만 아니라 현재 루이자의 남자친구, 가족들에게 있어서도 항상 루이자는 자신보단 남을 위하는 모습이다. 이를 보는 윌은 루이자에게 자신을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권한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한번 뿐인 인생 자신의 가능성을 버리지 말고 앞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루이자에게 권한다. 루이자는 윌을 간병하고, 윌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많은 액티비티들을 계획하고 진행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모든 게 윌보다는 루이자 자신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에 대해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윌을 위해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루이자를 변하게 하고, 변화된 루이자는 윌에게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다. 안타깝고, 정말 당연히 이해는 되지만 윌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도 없고, 앞으로의 삶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안락사를 택한다. 그러고는 루이자에게 더 이상 남을 위한 삶을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떠난다.


[내 생각]

윌은 결국 루이자를 떠난다. 루이자를 위해 남은 여생을 지난 날을 추억하는 삶으로 꾸미거나 현재의 불구를 사랑할 자신이 전혀 없는 자신을 알기에 윌은 스스로 떠나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루이자와 윌의 사랑이 윌의 선택을 몇 년 미룰 수는 있어도 이것이 평생을 이어가는 선택으로 지속될 거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돈이라는 굴레로 인해 자신보단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던 루이자에게 윌은 변화를 선물했고, 이 변화를 통해 루이자는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나 자신은 나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아직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부양 가족도 없고, 미혼이며, 간간히하는 기부금이 남을 위한 삶의 전부인 나이기에 남을 위해 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 간다고 할 수도 없다. 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현재 없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 번 사는 인생 일단 해외에 나가서 살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 내게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순 없다. 큰 경제적 문제는 없으나 그저 현재에 치여 앞을 내다보지도 않고, 그날 그날을 소비하고 있는 내 삶이 진정으로 반성된다.


이 반성이 부디 내 삶에 큰 반향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나 또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길 바란다. 지금은 그저 노후에 친구들과 검도하며, 풀룻이나 호른을 통해 앙상블하는 삶이 내 바램의 전부이지만, 이를 위해서든, 혹은 다른 내 꿈을 위해서든 앞을 향해 오늘을 힘차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