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7.08.24
제목 : 자존감 수업
저자 : 윤홍균
책 속 문구 :
자존감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다. 곧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지 또는 낮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레벨을 의미한다.
자존감에는 세 가지 기본 축이 있어서 사람들마다 자존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세 가지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다.
우선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축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중략)
두 번째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한다. 이것이 충족돼야 자존감도 높아진다. (중략)
세 번째 '자기 안전감'은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중략)
흔히 자존감을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맞는 표현이다. 스스로 쓸모없다고 느끼거나, 자기 조절을 못하거나, 마음 상태가 안전하지 않은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 자신을 사랑하기 어렵고 남을 사랑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자존감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자대가 된다.
자신감은 나의 능력과 과업의 난이도를 상대적으로 비교한 개념이다.(중략)
자만심은 나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거나, 과업들의 나이도를 지나치게 낮게 잡을 때 생기는 마음이다. 비합리적인 평가 탓에 자신감이 과해진 마음 상태다.
자존심은 자존감과 연관된 감정을 뜻한다. 자존감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관한 답, 즉 생각의 개념이라면, 이에 수반되는 감정을 자존심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자존심은 주로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느끼는 상한 감정을 의미한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문제다. 제압한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과 남편을 제압한 부인은 '남편은 나보다 논리적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긴 기쁨은 잠시뿐, 논리적이지 않은 남편과 사는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 쪽은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싸움에서 밀리든 힘에 밀리든 제압을 당한 쪽은 자괴감에 빠진다. 사랑 표현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 연애하고 있는 자신도 믿지 못한다. 우선 상대와 사귀기로 한 결정 자체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꾸 묻는다. '내가 지금 과연 연애하기에 적합할 때인가?' '과연 이 사람이 나에게 적합한 사람일까?' '이 사람도 곧 떠나지 않을까?' 혼자 연정을 품거나 호감을 느끼는 건 본능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연애는 다르다. 느낌이 아니라 판단이다. 짝사랑은 감정이지만 연애는 결정이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상담을 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사랑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화가 나서 눈물이 나고, 불안해서 우울해지고,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아픈 거다. 노래 가사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별이 행복의 지름길일 때도 많다.
부부 치료는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다는 과정이다. 성숙한 부부들은 배우자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곧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자존감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이므로 상대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애당초 모든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기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답은 과정에 있다. 과정에 몰입하면 된다. 평가는 나중의 일이고, 과정은 현재의 일이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오늘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 (중략)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쁘더라도 상처가 적다. 비록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은 훌륭했다는 만족감이 남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 위해서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상황 앞에서 혼자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게 현명함 아닐가 한다. 그렇다면 결정을 잘한다는 의미는 뭘까?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적절한 타이밍이다. 아무리 옳은 결정이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의미가 퇴색하거나 사라진다. 결정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간과하는 점이다. 옳은 결정, 후회 없는 결정을 하겠다며 차일피일 미룬다.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잘 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자신이 결정하는 범위다. 아무리 현명하게 결정한다 해도 그건 자신의 범위 안에 있다. 우리는 남의 결정을 대신 해줄 수 없고 미래를 결정할 능력도 없다. (중략) 결정에 대한 범위는 현재 자신의 범위에서만 고민해야 한다.
세 번째는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했다 해도 그게 후회할 결정인지 만족할 결정인지, 결정 당시에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략)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알고 있다. 어떤 문제를 아무리 고민해봐야 정답은 없으며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어떤(what)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하기까지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결정 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힘'이다. 그들은 타인이 무심코 내뱉는 말,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는 말, 질투에 섞인 비아냥 등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에 줏대가 있고 단단한 자기 기준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봐도 크게 이상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 뇌의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인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핵이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플 때는 슬픈 사건 위주로 기억이 나고, 억울할 때는 과거의 기억 중 억울한 일만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 어떤 경험 때문에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감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나쁜 기억 때문에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나쁜 기억만 붙잡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자존감도 떨어진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할 때는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문장으로 적어야 한다.
첫재, 부정형 문장이 아닌 긍정형으로
둘째, 타인이 주어가 아니라 '나'가 주어인 주체형으로
셋째, 과거 시점이 아닌, 미래 시점으로 적어야 한다.
세련되지 못한 의존성은 배우자나 연인과의 관계도 악화시킨다. 특히 사이가 안좋을 때 두 사람은 "당신만 변하면 나는 행복할 거야!" "네가 그 모양이니까 내가 미쳐가는 거야!"라고 항변한다. 이 또한 자신의 행복과 안정이 상대에게 달려 있음을 은연중에 표현한다. 자기보다 뛰어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더욱이 미워하고 경멸하면서도 의지하니 문제가 된다. 자기보다 못났다면 포기하면 될 텐데 그러지도 못하면서, 맘 놓고 의지할 만큼 든든하지도 않아서 문제다.
감정이 격양되면 뇌는 위기를 직감한다. 그러면 공격성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샘솟고, 활동성 물질인 도파민은 본능 중추로 모여 든다. 동시에 이성의 뇌인 전두엽은 스위치를 내린다. 이때 뇌는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해 이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하게 되고, 뇌의 가장 깊은 곳인 본능의 뇌(번연계)가 깨어난다. (중략)
여기서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몸의 긴장도는 점점 강해지고 최고점에 달하면 펑 하고 터져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화로 분출되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최고치를 찍고 나면 뇌는 급격하게 우울감에 빠져든다. 뇌와 신체가 지나치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휴지기를 갖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신비롭다. 그런 극도의 흥분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뇌는 재빨리 아드레날린 분비를 중단시킨다. 이때 인간은 심한 무기력과 무능감, 자책감을 느낀다.
누구나 격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다만 누구는 감장이 식기를 기다리거나 표 나지 않게 조절할 줄 알고, 누구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끔 행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루기 힘들어하는 세 가지 감정, 즉 밀도가 높은 감정인 창피함, 밀도가 낮은 감정을 대표하는 공허함, 상반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감정에 대해 살펴봤다. 만약 지금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이 세 감정 중에서 한 가지 감정이 자꾸 분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마다 유난히 자주 분출되는 감정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핵심 감정이라고 부른다. 창피함이 핵심 감정인 사람은 유난히 창피함을 자주 느끼고 주변을 심하게 신경 쓴다. 남들이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비웃었다'고 느끼는 식으로,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핵심 감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걸핏하면 자괴감이나 억울함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느끼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넘어간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 습관
1. 미리 좌절하는 습관
2. 무기력
3. 열등감
4. 미루기와 회피하기
5. 예민함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할 것들
1. 상처 극복하기
2. 저항 극복하기
3. 비난 극복하기
4. 악순환 극복하기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 가지 실천
1.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기'
2. 자신을 사랑하기
3.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4.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5. 패배주의를 뚫고 전진하기
다친 마음을 치료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싶다면 변해야 한다. 자존감을 찾고 싶다면 '분석'이 아니라 '변화'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변화를 피하고 미루는 습관'을 떨쳐내고 새로운 목표를 잡아야 한다. 이 때 갖춰야 할 네 가지 전제를 소개하겠다.
1. 내 마음을 우선하기
2. 행동하기
3. 지속하기
4. 혼자 말고 함께하기
문제의 시작은 연결에서 온다. 자책은 타인의 문제를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때 생긴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연결할 때 분노가 된다. 자기 문제로 지나치게 연결하는 습관은 예민함의 씨앗이 되며 자존감에도 치명적이다.
남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바꾸려 들거나 내 것으로 끌어오지는 말자. 남이 화가 났든, 의심을 보이든, 그 사람의 일일 뿐이다. 상대가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거기에 휘둘리거나 억눌릴 필요도 없다. 남의 감정은 남의 것이다.
받아들이고 원하고 지속하라
좋지 않은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 번째는 '받아들이기'이다. 두 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는 나에겐 오래된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습관이 나를 괴롭힌다는 점이다. 잘 받아들이려면 직접 적고 읽는 게 좋다. 가령 첫 줄은 '나에겐 남의 감정을 바꾸고 조정하려는 습관이 있다.' 다음 줄은 ' 이 습관은 나를 지치게 한다.' 이렇게 두 줄을 적어놓고 수시로 소리를 내어 읽는다. 담배를 끊고 싶다면, '나에게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내 몸에 해롭다.' 이렇게 적고 읽기를 반복하면 된다. 금연을 결심했다가도 다시 피우게 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잊기 때문이다. 흡연이 습관이란 걸 잊으면, '한 번만 피우고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습관이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잊으면, '스트레스 받는니 담배 피우는 게 나아'라는 생각이 싹튼다. 그러니 나에게 습관이 있고 그 습관이 내게 나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적어도 1주일간은 뇌에 알려줘야 한다.
두 번째는 '원하기'이다. 모든 일에는 양가성이 있다. 나쁜 습관에 대한 마음도 그렇다. 그 습관을 끊고 싶으면서도, 이마저도 없으면 삶이 흐트러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어내려면, 끊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존감을 낮추는 습관이 있게 마련인데, 거기서 꼭 벗어나고 싶다고 스스로 원해야 한다.
세 번째는 '척하기'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변화가 시작되어 별 어려움 없이 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새로운 습관이 생길 때까지는, 기존 습관을 끊은 척해야 한다. 척하는 것이 내 것이 되기까지는 적어도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지속하기'가 필요하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이것이다. 습관은 언제든 재발하려고 든다. 그래서 한 번에 모든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발했을 때 '역시 난 안돼, 이것 봐, 또 실패했잖아'라며 절망해버리는 게 문제다.
변화는 단 한 번의 결심이나 시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되는 듯하다가 안 되고, 안될 듯하다가 되기를 반복한다. 나도 모르게 다시 열등감에 빠지거나, 나쁜 습관에 다시 발 들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면 쌓고 또 쌓기를 반복해야 마음이 완성될 수 있다.
미국의 부부치료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부부 수천 쌍을 대화하게 두고, 그 패턴을 분석했다. 어떤 부부들이 행복하게 살고 어떤 부부들이 이혼으로 가는지를 분류했다. 그 결과, 부부 만족도는 경제적인 문제나 자녀 문제, 고부간 갈등 같은 굵직한 원인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이혼하는 부부들은 비난, 경멸, 무시 등 의사소통 방식 때문에 갈등을 빚었다. 이혼으로 가는 대표적인 소통 방식이 비난과 반격이었다. "이건 당신 때문이야!"라는 식의 비난과, "당신은 또 어떻고?"하는 식의 응수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런 방식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문제의 원인을 파고들면, 문제 해결이 아닌 관계 파탄에 가까워진다.
자존감을 높이는 결정법
1. 스스로 결정하기
2. 결정을 따르기
3. 결과가 나쁘면 미래형 후회하기
4. 결과가 좋으면 타인에게 감사하기
뇌 건강을 되찾으려면 숙지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뇌는 신체기관이다. 머릿속으로 노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팔에 근육이 생기길 바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도 필요하지만, 실제 근육을 만들려면 무거운 덤벨을 들어야 한다. 실제 행동이 중요하다.
둘째, 뇌 건강을 위한 노력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는 늘 뒤섞인다. 그러니까 자존감이 회복된 사람처럼 사소한 행동을 하다 보면, 뇌가 건강해지고 자존감이 회복된다.
뇌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행동
걸어라,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처럼
표정을 지어라, 나를 사랑하는 듯이
혼잣말을 하라
느낀 점 :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감정들로 인해 당혹스러울 때도 많고 일상에 영향을 준 순간이 많았다. 이런 것들의 원인들을 찾아보니 나는 내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해서 갖게 된 것도 아니지만 이미 갖게 된 낮은 자존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나처럼 내가 원하고 선택한 상태가 아닌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테니 많은 사람이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을 것 같다.
낮은 자존감을 높여보기 위해서 다양한 책을 봤지만, 자기 존중감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조차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이 책은 자존감이 발생시키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존감과 이와 관련된 다른 용어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후에 다양한 일상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예시를 주고 있는데 그 중에 나에게는 크게 2가지가 해당되었다. 하나는 욱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과는 달리 상대에게 욱해서 크게 소리치거나 거친 행동을 나도 모르게 표출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의학적인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배우자와 싸우고 이기려 드는 것이다. 많이 싸워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좋은 것이라는 기존의 내 망상을 철저히 박살내주었다. 의식적으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을 지라도 상대를 이겨봐야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배우자와 싸워서 이기는 것은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으로 자존감 회복을 위한 몇 가지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나'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실천 방안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뭐든지 실천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오죽하면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내 문제에 대해 인지를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하루 하루 실천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 나를 보게 될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실천 방안들을 하루 하루 실천하려고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