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일시 : 20118.09.07
제목 : 역사의 역사 (History of writing history)
저자 : 유시민
책 속 내용 :
투키디데스는 도시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로 터져 나온 원인을 밝히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는 어떤 사건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달려 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바로 그런 사건이라고 보았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을 선택해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제9장에서 살필 헌팅턴의 이론을 미리 가져오자면, 두 문명은 '단층선'을 공유하지 않았으므로 '조우'하지 않았고, '충돌'한 적도 없으며, '교섭'하지도 않았다. 언어, 문화, 종교, 정치 체계가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도 두 문명의 지식인들은 국가 권력의 존재 의미, 군주와 백성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윤리적 규범을 만들어 냈다. 무엇이 모든 문명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최소한의 윤리를 만들어 내는가? 바로 사피엔스의 본성이다. 그게 아니라면 조우한 적이 없는 상이한 문명들에게서 동일한 윤리적 규범이 나올 수 없다.
만약 역사의 진보가 인류의 정신적, 도덕적 향상을 의미한다면 자유와 평등 또는 공화정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진보 세력에 맞서 군주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도덕의 향상을 가로막는 세력이 되고 만다.
역사가는 저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같은 사실로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사실의 선택은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 영역에 속하며, 역사가의 주관은 개인적 기질, 경험, 학습, 물질적 이해관계, 사회적 지위, 역사 서술의 목적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좌우한다.
카는 역사가들이 그 시대의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해서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를 카는 아래와 같이 규정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 5장과 제 6장에서 카는 지식인으로서 인류 사회의 미래를 전망했다. 그는 여기서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가 오랫동안 토론했고 지금도 논쟁하는 쟁점을 다루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의 진보에는 정해진 방향이나 목표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진보가 종착점에 도달해 역사가 종말을 맞는 때가 올 것인가? 여기서 역사는 '과거를 서술한 문자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런데 창조적 소수자는 왜 창조성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할까?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내는 우상화 현상 때문이다. 토인비는 우상화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일시적인 자아의 우상화'다. 한 번 응전에 성공함으로써 권력을 차지하고 숭배의 대상이 된 창조적 소수자는 다음 도전의 성격이 지난번과 다른데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응전하다가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일시적인 제도의 우상화'다. 성공한 창조적 소수자는 그 성공을 가져온 체제와 제도에 집착하다가 응전에 실패한다. 셋째는 '일시적인 기술의 우상화'다. 성공한 창조적 소수자는 그 성공을 가져다준 생산 기술과 군사 기술에 매달리다가 실패한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
느낀 점 :
역사의 역사라는 한국어 제목으로는 사실 책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 영어 제목인 history of writing history가 이 책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영어 제목대로 이 책은 역사책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역사란 주제로 유시민의 치열한 논리 전개에 같이 하는 재미가 있었다. 역사에 대한 정의부터 역사가와 역사학자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부터 대화를 위한 기초 단어 정리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하나의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었고, 중간 중간 저자 개인의 생각이 들어가는 부분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었다.
흔히 역사책은 과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적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사람의 기억은 정확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더 확신하게 된 것은 사람은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환경, 경험, 상황 등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객관적이라고 착각할 뿐인 것이다. 기억에는 감정이 담길 수 밖에 없고 감정이 담기게 되면 일정 부분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심리학적으로 알게 된 이 사실이 역사책에도 대입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책 속에 언급되지만 역사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글을 쓴 시대와 상황을 먼저 알고 나서 역사책을 보면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고구려, 발해 등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없다. 우리 민족으로 인정은 하고 있으나 승자의 원리인지 일제 식민시대의 조작인지 알 수 없으나 많은 부분이 왜곡된 상태에서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백제설 등 우리 나라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국가적으로 조사하지 않음은 아쉽다. 이 또한 고대에 대한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준 역사가들의 상황과 경험 등에 의한 왜곡일 것이다.
또한 책 속에 역사는 진보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는 과정이 재밌었다. 짧게 현재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은 진보할 지언정, 사람의 도덕성이나 본성 등의 진보는 없었기에 2000년 전의 인간 관계에 대한 책이 현재까지도 유용한 것이고 과거에 있던 사람과의 사건들이 요새도 반복되는 것 아닌가 싶다.
작가 유시민의 글들은 대체로 내가 느끼기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고찰을 해서 이러한 과정을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며 공감할 부분은 공감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으며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만의 논리를 만들 정도로 나는 부지런하지 못하다. 책 속에서 본인의 생각인 부분과 다른 문헌에서 끌고 온 부분들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부분 또한 유시민 작가 글들의 매력인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는데 우연히 앞에 작가의 사인을 봤다. "당신의 삶이 역사입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유시민 작가의 말이 있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 이 두 가지 문장이 책을 덮고 나서 내게 질문을 하고 있다. 나만의 역사란 무엇이고 내 삶은 어떤 색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가. 물론 내 뜻대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아서 나도 어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 색으로 살아가고 싶은 가에 대한 질문을 자꾸 내게 해보게 된다.
삶에 적용할 점 :
내 스스로가 내가 살아온 삶에 의미를 닮을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삶에는 의미를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이대로도 나는 괜찮은가.
뭔가 치열한 고민과 생각, 그리고 이 생각에 이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