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일시 : 18.08.02
제목 : 언어의 온도
저자 : 이기주
책 속 문구 :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의 끔찍함을.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세상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난 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며 콜록콜록 공연한 기침만 해댔다. 어떤 말은 일부러 못 들은 척해서 그냥 공중으로 날려버려야 한다. 굳이 민망하게 두 번 세 번 주고받으며 서로의 심경을 확인할 이유가 없다. 괜스레 마음만 더 아프다.
사실 유머와 개그는 조금 결이 다른 개념이다. 개그는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 끼워 넣는 즉흥적인 대사다나 우스개를 뜻한다. 웃기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유머는 그렇지 않다. 익살과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뒤범벅된 익살스러운 농담을 의미한다. 유머 앞에서 우리가 왁자지껄 웃어젖히다가도 어느 순간 씁쓸한 눈물을 쏙 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가 싶다.
유머의 어원도 흥미롭다. 유머는 라틴어 우메레umere에서 유래했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유연한 성질을 지닌 물체를 지칭한다. 그래서일까. 적당한 유머는 삶의 경직성을 유연성으로 전환하고 획일성을 창의성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은 "유머는 남을 웃기는 기술이나 농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머는 한 사람의 세계관 문제다"라는 꽤 멋진 말을 남겼다.
그러니 섣불리, 설고 어설프게 슬픔을 극복할 필요는 없다. 겨우 그것 때문에 슬퍼하느냐고, 고작 그런 일로 좌절하느냐고 누군가 흔들더라도, 너무 쉽게 슬픔의 길목에서 벗어나지 말자.
차라리 슬퍼할 수 있을 때 마음에 흡족하도록 고뇌하고 울고 떠들고 노여워하자. 슬픔이라는 흐릿한 거울은 기쁨이라는 투명한 유리보다 '나'를 솔직하게 비춰준다.
우린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일도 그렇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
우린 새로운 걸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무작정 부여잡기 위해 애쓸 때보다, '한때 곁에 머문 것'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것을 되찾을 때 우린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오랜 기간 삶의 풍요를 만끽한다. 인생의 목적을 다시금 확인한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비우는 행위는 뭔가를 덜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움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관계가 그러한 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 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
하긴, 상처란 것이 이별의 아픔을 정면으로 맞으며 몸부림친 흔적인데 어찌 쉽게 지울 수 있겠는가.
'어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진짜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여보게, '부드러움'에는, '강함'에 없는 것이 있다네, 그건 다름 아닌 생명일세. 생명과 가까운 게 부드러움이고 죽음과 가까운 게 딱딱함일세. 살아 있는 것들은 죄다 부드러운 법이지."
캄캄한 밤, 어둠 속에서 자식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가 목놓아 외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상대방의 편안함과 위태함을,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느낀 점 :
언어의 온다라는 책과 말, 글, 행으로 구성된 목차로 인해 말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말의 품격을 읽고 나서 읽어서 인지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생각했다. 읽고 난 지금은 감동적인 수필집을 본 것 같다.
한 호흡에 연속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몰입감이 없어서라기 보다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었고 또 충분히 음미할 시간이 내겐 필요했다. 시와 같이 운율을 갖거나 표어 같이 짧고 울림 있게 말하려고 하지도 않고 담담히 이야기했는데 저자가 선택한 단어와 말투가 큰 울림을 줬다.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예전에 겪었던 경험들을 새롭게 재해석하거나 다시 바라보며 얻은 격한 공감, 내가 아직 겪지 못했지만 인생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한 감동을 느끼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때로는 침묵으로 넘어가기도 해야한다는 점이나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삶에 여유와 삶의 굴곡을 견뎌낼 수 있는 유머 등의 단순히 책을 통해 새로이 생각하게 된 부분들이다. 이 책을 통해 느낀 인생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으나 알지 못했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통해 알게 된 것들과 이를 통해 느낀 감동이 책장과 함께 덮어지는 것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내 몸에 익혀지길 바란다.
삶에 적용할 점 :
유머, 감동, 여유 등 이 책을 통해 느낀 많은 것들이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내 몸에 배여들게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