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입문
일시 : 2020.08.05
제목 : 성경연구입문
저자 : 존 스토트
책 속 문구 :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넓은 시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충만이 그 안에 거하는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충만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보아야 한다(골1:19, 2:9~10)
그리스도를 보는 분명하고 참되며 새롭고 고귀한 시각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성경을 통하는 길뿐이다.
성경을 구성하는 책마다 내용, 문체, 목적이 다양하며, 몇몇 책은 그리스도를 간접적으로, 심지어 에둘러 증언한다. 그러나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이렇게 간략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계19:10)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성경을 펼쳐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그리신 그리스도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펼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다.
"성경-그리스도-믿음-구원."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으키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마침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믿을 때까지 그분을 계속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믿음으로 계속 맛볼 때만 영적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딤후3:17)춘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성경의 인물들이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을 대하셨듯이, 우리가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대하길 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성경의 인물들을 대하신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 모든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 복음서를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첫째, 사복음서 기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직한 사람이다.
둘째, 이들은 분명히 빼고 싶었을 법한 사건들까지 포함시킴으로써 자신들이 공정하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중략)
셋째, 이들은 자신이 예수님의 증인이거나 증인들의 경험을 보도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넷째, 예수님은 유대 랍비처럼 가르치셨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다섯째,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절대적으로 특별하고 결정적인 것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다면, 이것이 아득한 옛 안개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생각할 수 없다. (중략)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데, 이것이 언약에서 이들의 몫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약속은 무조건적이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약속뿐 아니라 계명을 주신다. 그래서 시내 산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은혜 언약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줄곧 동일하며 아주 동일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그로써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갈3:2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삶은 "성령 안에 사는 삶"이라 할 수 있겠다. 성령의 인도 아래,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 하나님의("하나님의 호흡하신/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보존되었으며, 사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참되고 믿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다. 또한 자신의 사도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가르칠 권한/권위를 주심으로써 신약성경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려면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복종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실 때 두 단계로 일하신다. 첫째이자 객관적 단계를 "계시"라고 하는데,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둘째이자 주관적 단계를 "조명"이라 하는데, 성경에 드러난 진리를 이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건전한 성경해석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성경 본문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단순성의 원리라 부르겠다. (중략)
둘째, 우리는 성경의 본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원리다. (중략)
셋째, 우리는 성경의 일반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조화의 원리다. (중략)
그러나 율법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율법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을 영구적으로 구속하는가? 아니다. 모세 율법은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구성된 복합법전이었다. 신약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친다. 의식법은 이제 유효하지 않으며, 성전, 제사장직, 제사제도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고 음식법도 그리스도께서 폐지하셨다. 모세의 시민법은 하나님의 의와 정의를 나타내는 표시로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그 어느 교회나 나라도 이것을 세밀하게 법제화하고 시행할 의무가 없다. 첫째, 모세의 시민법은 구속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을 위해 제정되었다. 이들은 국가인 동시에 교회였다. 반면에 지금은 그 어느 교회도 국가가 아니며 그 어느 국가도 교회가 아니다. 둘째, 모세의 시민법은 처음에 유목민이었다가 농경 사회가 된 신생국가에 맞춰졌다. 그러나 모세의 도덕법은 폐기되지 않았다. 반대로,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우리 안에서 충족되게 하려고 죽으셨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신다(롬8:3~4, 렘31:33, 고후3:6~8도 보라).
신약성경에 따르면, 진리는 단순히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을 행하는 자"의 생활 중에 다섯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는 예배다. (중략)
"말씀을 행하는 자"의 둘째 표지는 회개다. (중략)
"말씀을 행하는 자"의 셋째 특징은 믿음이다. (중략)
순종은 우리가 단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는 넷째 방법이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다섯째 표지는 증언이다. (중략)
느낀 점 :
하나님을 만나 물어보고 싶었던 게 생긴 이후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인격적인 만남을 했다는 사람들을 찾아 물어봐도 딱히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계시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의 계시나 감동으로 알려 주시는 것 같은 경우, 사탄의 속임수인지 내 영혼이 하는 말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지 구분할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마음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과정이 주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내가 묵상할 때 내 안에 성령님이 내게 알려 주시고 또 내가 거기에 반응해 기도로 말씀드리는 과정이 대화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내 영혼의 구석진 곳에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믿지 않거나 믿는 사람들 속에서도 성경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 정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인지? 성경 속 모든 내용이 모두 과학적 사실인지? 성경은 사실이 아닌 비유로 적힌 글이다? 등 다양한 질문이 있다. 게다가 성경을 읽었을 뿐인데 믿어진 사람, 성경을 열 번이나 통독했는데 믿을 수가 없던 사람 등이 있다고 한다.
성경을 통해 주님과 대화하려는 내게 있어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 보인다.
"그리스도를 보는 분명하고 참되며 새롭고 고귀한 시각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성경을 통하는 길뿐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의 부활을 증거한 신약 성경이나 그분이 권위를 인정한 구약 성경에 대해 우리는 권위를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의 삶에 대해 적고 또 논증해 놓은 신약 성경들의 권위는 어떻게 증명될 것인가? 신약 성경이 누군가의 소설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반론에 대한 답도 하고 있다. 성경의 다양한 저자들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서술, 다양한 저자들의 배경, 그리고 작위적이라면 포함될 수 없을 법한 내용들을 통해 성경의 사실성을 논증하고 또 권위를 입증한다. 여기에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더하자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성경이 하나님의 뜻대로 작성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C.S.루이스의 변증이나 내 삶을 뒤돌아 볼 때도 가능했다.
"하나님은 성경의 인물들이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을 대하셨듯이, 우리가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대하길 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성경의 인물들을 대하신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 모든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시도 있고 역사서도 있고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나타나 있다. 또 많은 부분이 이야기로 나타나 있으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언어가 아닌 작성자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본인 한국어 본을 보는 나는 이해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핑계를 댄다. 이런 환경에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시기에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기 위해 그 시대 그 사람의 배경 지식에 맞춰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니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를 펴놓고 성경을 읽는 것이나 히브리어를 공부해가며 읽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는 자를 만날 때,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하는 자는 어떤 말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과거의 나처럼, 단 하루 만에 해와 달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가? 빅뱅 이론이라면 가능한가? 혹은 사해 문서라는 것도 있다는데 바울의 편지 등 성경의 문서들이 발견될 당시 탄소 연대 추정은 해 보았는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물질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있는지? 끝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후에도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 사람들과 다를바 없다. 믿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진리에 대해 궁금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책에서 거론된 증거들로도 충분히 권위를 인정하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성경의 권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묵상하며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당장 원서를 읽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겠지만 이 책과 같은 도움을 주는 책들을 읽음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온전히 성경을 이해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삶에 적용할 점 :
성경의 권위가 어떻게 세워지는 지 정리하고, 성경을 읽고 또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책들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