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
일시 : 2018.08.27
제목 : 브루클린의 소녀
저자 : 기욤 뮈소
책 속 문구 :
나는 캔디스처럼 인생을 허망하게 끝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나 역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돼 수없이 강간당한 끝에 탈출한 소녀에 불가할 테니까. 평생 강간당한 소녀라는 구설수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될 테니까. 마치 시골 장터에 구경거리로 내놓은 짐승처럼 관음적인 호기심의 대상과 치기어린 질문에 대답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까.
사이코패스가 당신에게 어떤 짓을 했죠? 몇 번이나 그런 짓을 하던가요?
검철이나 경찰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도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목적을 앞세우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마구 쏟아 내리라. 그들은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내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하리라.
언젠가 내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나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면서도 보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려 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난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날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나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는 장면을 상상한다.
내가 누구인지 그 남자가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하인츠 키퍼에게 납치되었던 소녀라는 사실은 다른 모든 수식어를 삼켜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진 꼬리표일 테니까. 내가 만난 남자는 그 사실을 알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테지만 그 전과 같지는 않으리라. 적어도 연민과 동정심이 더해질 테니까. 나는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어디서나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녀로 남고 싶지 않다.
이 사건에서 유일한 죄인은 하이츠 키퍼뿐이니까.
느낀 점 :
기욤 뮈소의 소설 속 말투가 광고처럼 프랑스식 소설의 전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후체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 소설가가 된 거 같다. 순간순간에 대한 감수성 넘치는 표현력에 더해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까지 지속되는 반전 묘미가 있다. 사실 인내력이 강하지 못한 나는 중간에 맽 뒷 장을 살짝 훔쳐보았으나 훔쳐봤음에도 불구하고 또 반전이 있었다.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이야기 진행과 감수성 넘치는 표현력은 이 소설에 몰입감과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 소설 속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 부분은 사건 피해자의 입장이다. 피해자 사생활에 대한 보호와 타인에게 널리 알려 재범이나 재발을 방지한다는 등의 알권리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란 생각이다. 재범이나 재발을 방지한다고는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잊을 수도 없이 사람들의 한낱 술 안주거리고 오르내리며 모욕과 동정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피해 사실을 무조건 숨긴다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사실을 알리지만 모든 이가 시민 의식을 갖추어 피해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아주 뻔한 답 밖에 떠오르지 않음이 안타깝다. 왜냐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인에 대한 폭력성과 타인에 대한 몰지각함, 무공감성 등을 생각하면 배움의 시간이나 지위, 권력과 상관없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예로 모범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의 표준은 되어야 할 우리 나라 공중파 뉴스에서 피해자와 형사들의 신분을 보호해준 적이 있던가. 범죄자의 얼굴은 인권 보호해주면서 말이다.
또한 소설을 읽으며 이 부분과 관련되어 다른 궁금함이 생겼는데 타인의 모든 과거를 다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점이다. 사랑하고 보니 예전엔 그랬다더라는 것도, 과거를 다 알고 나니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것도 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궁금함이 들었다. 특히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밖에 있는 사건을 겪은 사람의 경우라면 나는 사랑하고 나서 알게 된다 한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기에 트라우마 배려만 하면 되지 않을까 가볍게 생각해 버릴 것 같다. 이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지금 나에겐 지금 관계의 신뢰만 중요할 뿐 과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도의 생각이 있지만, 경험 상 실제 사건을 겪기 전과 후는 사람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시작으로 납치 사건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고, 자녀를 잃은 피해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 구성과 작가의 말투 안에서 누군가의 범죄가 얼마나 많은 이의 삶을 힘들게 하는 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범죄에 당한 피해자를 어떻게 사회에서 보호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