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일시 : 2020.07.15
제목 :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저자 : 톰 라이트
책 속 문구 :
핵심 질문들
1. 우리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가?
2. 우리는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 예수님 자신의 부활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4. 그렇다면 이 세상 전체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독교의 궁극적 희망은 무엇인가?
5. 이 우주 전체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6.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7. '육체의 부활과 영원히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과 관련해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8. 특별한 희망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문화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축하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희망에 따라 살 수 있는지
9. 이 세상에서 교회가 감당해야할 사명과 과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10. 궁극적 미래에서만이 아니라 좀더 가까운 미래에서는 그러한 '희망' 이 어떠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11. 또 거기에는 어떠한 놀라움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미래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신앙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죽음과(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그 직후의 상태로 머무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새롭게 재창조된 세상에서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단계다.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 안에서 하신 일을 이 세상 전체를 위해서도 하시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모든 역사를 포함하는 우주 전체다.
삼위일체란 예수님이 하나님 그리고 성령과 여전히 동일시되면서도 (지상에서의 삶이 이후에 그냥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과 구분되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까이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와는 별개로 존재하신다는 점에서) 성령과도 구분되는, 예수님만이 가진 인간성을 이해하고 축하하는 방식이다.
승천은 진정한 인간으로 남아 있는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중요한 의미에서 그분의 부재를, 또 한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고 해결하시고 그저 안도의 한숨만 이끌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들판에서 바다와 홍수에서 기쁨의 외침을 이끌어내실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론은 대부분의 1세기 유대인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강력하게 믿었던 내용, 즉 하나님의 인도 하에 이 역사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가는 방향은 정의, 치유 그리고 희망이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라는 믿음에 대한 것이다.
사건의 정황은 이러해 보인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옛 유대교 이야기 안에서 살았고 그 안에서 숨쉬며 기도했다. 충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그들은, 비록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정말로 당신이 늘 의도하셨던 일을 해 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이미 이 세상의 진정한 주시며, 현재 성령을 통해 은밀하게 존재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기실 분으로 예수님이 마지막에 드러나게 될 때, 그러나 아직은 오지 않은 그 때에 대한 암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울은 통상적인 인간의 '프시케'(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으로서, 우리가 현재의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질병, 사고, 부패 그리고 죽음 앞에서 무력한 힘)가 동력이 되는 현재의 육체와 하나님의 '프뉴마'(pneuma), 새로운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는 힘이 동력이 되는 미래의 육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하나님의 종국적 미래에서 영광스럽게 재확인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확고하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주님의 일에 충성해야 해.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우리의 노동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야"
신약성경의 내용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와 성령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느 때든지 직접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나아갈 수 있다.
이스라엘은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이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믿었다. (이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인데, 그도 유대인이니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이 밝혀 준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그럼으로써 모든 것의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일부로서 이스라엘도 구원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신약성경에는 이 '구원'이 먼 미래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단서와 암시와 명백한 주장이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올 것을 현재에 충실하게 예견하며 지금 이 곳에서 그 구원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아직은 죽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누릴 것이다.)
'구원'의 온전한 의미는 (1) 단지 '영혼'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것이며, (2) 미래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것이며, (3)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온 세상의 회복, 그 중간 단계에서 인간의 회복이 있다. 바로 여러분과 나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순종의 삶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룩은 착해지려고 애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세상,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들어간 그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진정한 기독교의 희망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타락과 부패와 죽음을 극복하시고, 온 우주를 자신의 사랑과 은혜와 권능과 영광으로 채우시는 것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느낀 점 :
내 삶에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자 습관적으로 반응하던 내 신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성찰할 기회가 생겼다. 간단히는 어릴 적부터 고민이던 살아봐야 고통 뿐인 이 세상에 굳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찾은 것 같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순간의 기쁨이 있기에 살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 찰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긴 시간의 고통을 견디는 건 내가 보기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강조하는 구원은 우리가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살하면 하나님이 지옥 보내신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 여기에 더 몇 가지 위로의 말들이 붙지만 결과적으로 천국에 가기 위해 이 땅에서 얻는 고통을 견디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일단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계명에도 맞지 않고, 성경에도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부분도 있는 것보니 이는 아닌 것 같았다. 또한 현재의 삶에 기쁨이 넘쳐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내 신앙에 대한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을 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경에 기반해서, 천국이란 무엇이고 죽음 이후의 세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하며 현재 사람들이 갖는 많은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 머리로 어느 정도 납득했으나 내 마음이 온전히 굴복하진 못한 것 같은 부분이다.
몇 가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 아닌 우리가 알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육신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로 끌어내려서 이해하려고 하거나 무시하고 잊으려 한다. 내 경우에는 후자였던 것 같다.
둘째로 우리 신앙에 파고든 플라톤주의다. 영과 육을 나누고, 천국과 지옥을 나누어 이데아 세상인 영혼과 천국의 세상을 동경해야 하며 육과 지옥은 경멸의 대상으로 나누는 이원론이 우리 신앙에 많이 파고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셋째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늘은 물리적인 하늘이 아닌 계층적인 하늘이며 우리 세상에 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과 성경에서 하늘에서 내려와 하나가 된다고 하신 점이다. 우리가 죽어서 주님 나라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가 내려와 이 세상을 하나로 합치신다는 점이다.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구원'의 온전한 의미는 (1) 단지 '영혼'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것이며, (2) 미래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것이며, (3)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온 세상의 회복, 그 중간 단계에서 인간의 회복이 있다. 바로 여러분과 나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순종의 삶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다!
이 세 문장을 통해 현재의 내 위치와 내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것이 현재의 내 삶을 긍정하고 기쁨으로 넘치는 삶으로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미래의 내가 기쁨이 가득차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합리화하는 것에 익숙치 않을 뿐더러 고통 속에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성경에 기반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해 가는 과정 속에서 단어 하나를 바꿈으로 많은 오해가 생기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혼용하게 하고 부활을 육신이 아닌 영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 등 단어 하나, 살짝 다른 의미가 많은 오해를 낳는다. 그리스도인으로 내가 무엇을 믿는지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 점을 유념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함을 느꼈다. 여기에 더해 남아 있는 약속이 기쁨이 되는, 또한 현재 살아계신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현재의 내 삶이 기쁨이 되는 것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자 한다. 내가 아무리 이 부족한 머리로 논리를 세운다고 해도 그것을 정말 사실로 믿고 체험하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기쁨을 얻는 것은 할 수 없다. 아무리 공기가 있다고 과학적 증거를 대도 일상에서 공기가 있다는 잘 믿어지진 않는다. 난 이렇게 목이 곧은 사람인지라. 오직 주님께서 진리를 내게 허락해주시기를 바라고 이 진리로 내 삶에 참된 기쁨이 찾아오게 해주시길 바란다.
삶에 적용할 점 :
남아 있는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하자. 그리고 이 책을 읽어서 조금이라도 더 알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