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일시 : 2016.09.10
제목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저자 : 오찬호
책 속 문구 :
여성혐오는 사람이 남자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상한 '남자다움'을 맹목적으로 강요받았던 누군가가 '여자다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느껴 '인간다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느껴 '인간다움'을 넘어선 행동을 했음을 말한다. 모든 남자가 범죄자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다수의 남자가 폭력의 전제가 되는 상태를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그러니 남자다움, 여자다움으로 사람의 행동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좋은 사회가 쉽사리 올 리 없다.
나는 강한 남자를 만들려고 하는 세상의 우스꽝스러움, 그리고 여기에 짓눌린 여자들의 모습을 사회학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이 책에서 남자들은 폭력의 가해자로 주로 등장하지만 실제 이들은 사회적 희생양이다.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더 약자인 여자들을 무싷하면서 보상받으려 했다. 그래서 '약해진' 한쪽은 생존을 위해 더 '강한' 남자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 강해져야 하니, 남자들은 '더' 힘들다. 그리고 '더' 이상한 시야를 갖게 된다. 남자가 '여자들'을 비꼬는 모습은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지만 한국에서 더 노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학은 단순하게 말해 개인의 인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존재를 들춰내는 학문이다.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정서로 '규격화'되어 있을 거라는 놀라운 생각이야말로, '단편화된 남성 사고'의 전형 아니겠는가. 집단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표현의 수위를 높인다.
CBS의 변상욱 대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혹독한 군사훈련이나 외부로부터 격리된 집단 수용 생활이 인간을 절제와 협동심, 인내심, 자기 성찰로 이끄는 효과가 뛰어나다면 남성 대부분이 군 복무를 한 우리나라는 품격 있는 신사로 가득 찼어야 한다."
'희생 정신이 있어서 좋다!'는 주변의 평가에 히죽거리면서 왜 '군 복무 자체를 선택할 수 없어서' 그래서 가산점을 부여받을 수 없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하다'고 하는가?
교사도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더 이상 체벌을 정당화할 논리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변화된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학생들을 슬리퍼로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성기를 주물럭거리던 폭력 교사들은 과거에 비해 사라졌다. 이제는 열 대 맞아도 '참았던' 아이들이 한 대만 맞아도 이를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나약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원의 영역'에서 배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폭력을 '참는' 학생이 아닌, 폭력을 '참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교육 현장에서 탄생했으니 상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군대 폭력 문제는 진퇴양난이다. 이를 문제 삼는 '외부 세력'이 미약하니 '내부'가 자성하는 수위 자체가 워낙 표피적이다. 그러니 어떤 처방을 내리든 별 효과가 없다.
가해자가 북 치고 장구 치고 가해자가 병 주고 약 주는 곳이 군대다. 이런 비합리성이 일상화된 공간에서는 폭력을 문제 삼는 자가 유난 떠는 자로 인식될 뿐이니 가해자는 용서받을 것이 없는 자가 되어 살아간다. 일반적인 세상에서 폭력이 동반된 문제가 이처럼 쉽사리 해결될 리 없다. 하지만 군대를 거쳐가는 이들은 세상 이치의 '역', 즉 오답을 정답으로 배운다.
특히 '폭력'은 특정 언행이 존재한다면 가타부타 따질 필요 없이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나쁜 사회'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기 전에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것은 기득권 세력이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는 식과는 다르게 대중의 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회는 나쁜 걸 나쁘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개인을 길러낸다.
<한겨레> 기사 "할머니의 어떤 기억"(2015.4.24)에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국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이 우수수 등장한다.
기사는 이 정도 정황이면 명백히 지휘부의 명령 없이는 불가능한, 조직적인 강간이라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이 글이 '군의 과거사'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니 이쯤 해두자. 분명한 것은 주월 한국국 사령부가 공식 집계한 바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전체 한국국의 강간 범죄 심파나 및 징계 발생이 21건인데 그것만으로는 2만명에 이르는 '라이따이한'의 숫자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다.
미국은 패망 7년 뒤인 1982년부터 '질서 있는 이주 계획'(Orderly Departure Program) 정책에 따라 베트남의 아메라시안(Amerasian, American+Asia)들과 그 가족들의 미국행을 적극 돕는다. 이들을 '전쟁의 희생자'로 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답다'는 걸, 잘못한 일에 대해 한 치의 변명도 없이 순도 100퍼센트의 사과를 하는 것이라 배웠지만, 그것이 얼마나 거짓 이미지인지 이제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인지 한국군은 지금껏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진상 조사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해외 학자들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자본주의가 유독 가파르게 성장한 이유로 (군부독재 외에도)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손꼽는다. 한국의 남자들은 '자본주의의 노동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도 전에 학교와 군대에서 이미 자본가가 '부려먹기에' 최적화된다는 말이다. 즉 한국의 남자는 어떤 사회에나 있는 남자와는 '다른' 남자다. 그러니 '원래' 그런 남자는 없다.
논개, 아니 '기생 논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그녀는 기생이 아니다. 기생으로 가장했을 뿐이다. 논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희 장군의 부인이다. 그냥 부인이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진주대첩 때 남편이 담당하는 의병 교육을 실질적으로 도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사대부 남자'만이 할 수 있을 만한 '충'을 감히 여자가 너무나도 완벽하게 성취했기 때문이다.
성씨 떼어버리고 '이름만 부르는' 거의 유일한 위인이 논개 아닌가? '순신이, 중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는 명백히 대비된다. 그녀의 성명은 '주논개'다. 같은 '활약'을 해도 남자와 여자가 후대에 기억되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학생들은 '평범함'은 사람이 '특별하지 않다'는 동일한 상태이지만, 어떤 성별이냐에 따라 평범함에 대한 인식은 결코 공평하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
나는 내 자녀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 대신 '인간답게'라는 말에만 신경 쓰며 살았으면 한다.
"여어, 오 박사, 그렇게 생각 마. 그게 바로 더 이상 '가정교육 수준'으로는 한 아이가 가정 밖에서 경험하는 사회화의 무게를 뒤집지 못한다는 증거야.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최소 5년을 다니잖아. 칫솔, 양치 컵, 식판부터가 이미 남녀가 확연히 구분되는 곳에서 자기 친구들은 핑크색 수저를 들고 있는데 혼자만 파란색 들면 어색한 거지. 사회적 관습을 질서라고 여기는 교육 행태도 여전하지. 그렇게 시작하는 성별 구분이 과거에 비해 더 빨라졌고 하루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잖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오박사처럼 "여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더 혼란스럽지. 다른 부모들도 별로 관심 없을걸? 원어민 영어 선생이 백인이야 흑인이냐 이런 건 따져도 발표회 때 옷들은 왜 그렇게 구닥다리인지 따지는 사람은 없지. 오히려 아이들 기 살린다고 드레스 맞춰준다고 그러잖아."
성희롱인지도 모르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남자다운' 남자들과 알면서도 모른 척 해야하는 '여자다운' 여자들, 그리고 이 문제가 드러나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전혀 '인간다운' 세상이 아니다.
느낀 점 :
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남성 우월주의적인 책이지 않을가라고 추측했다. 처음부터 정 반대인 페미니즘에 가까운 책임을 선포하고 시작하는 이 책에서는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이기에 완벽하진 않을 수도 있다고 추측되지만, 이 땅의 사회학자가 가질 수 있는 남여 문제에 대한 의식을 알려 준다.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에 다루는 것 같지만 특히 다른 문제보다는 남자의 군대에 대한 특권 의식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책은 도끼가 되어야 한다던 카프카의 말 처럼 책을 읽고 내 의식에 새로운 깨우침이 있다면 좋은 책이라고 했었다. 이 책 또한 같은 사회를 신선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점에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자가 바라보는 시점 뿐 아니라 정말 여자가 바라보는 시선도 좀 궁금하다.
이 책의 많은 예시 중에 가장 재밌던 것은 이모 이야기다. 우리는 다들 식당에서 고모가 아닌 이모를 찾는다. 이 이유가 굉장히 슬프지만 재밌게 다가온다. 이모가 없고 고모만 많은 나에게는 처음 식당에서 이모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어서 보통 사장님이나 저기요를 외치다가 최근에서야 정감 있어보이려고 이모님하고 가끔 부르는 수준이라 이야기 자체게 많은 공감은 안된다. 하지만 굉장히 타당해보이고, 이모가 많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공감하며 좋아했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사실은 라이따이한 관련 이야기다. 이 서평을 적는 곳이 인터넷 상이기에 말이 조심할 수 밖에 없는데, 굉장히 부끄러웠다. 사실이라면 정말 제대로 된 진상 규모를 해야할 것이다. 내 상처 뿐 아니라 내가 남에게 입힌 상처도 같이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단 한 대의 체벌도 부당하다 말하는 것이 옳다는 부분이다. 무의미하고 변태적인 폭력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잘못을 했을 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체벌까지 부당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또한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가치 기준이 명확해서 자기가 혼날만 했다 안했다를 제대로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고 본다. 현재 교육 현장의 교권 추락으로 인해 벌어지는 추태들과 갈수록 더 악독해지는 집단 괴롭히기 등을 봤을 때 현재 상황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이 책의 핵심 주제가 아니므로 말을 아끼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깊은 성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 때 남성들의 삶에 현재 오히려 여성들에 의해 역차별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부분은 이 책을 읽고 반성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여성과 남성,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차별한다. 이 부분들은 아마 교육 혁명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세상은 나쁜 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을 길러내는 세상이라고 말이다. 이는 자기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개인을 길러 내는 세상일 것이다. 이 세상이 좋은 사회가 되려면 개인의 시선이 한 쪽으로 편중된 사람이 아닌, 객관적인 사람 즉 자신의 의견과 신념을 본인 스스로 생각해서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던지 이런 저런 많은 화두들을 통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언제나처럼 내 생각의 끝은 대체로 해결책이 나오거나 깊은 성찰을 한 것이 아닌 걱정일 뿐이지만 말이다.
삶에 적용할 점 :
내 삶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혹은 주입으로 이루어 진 것은 없는가? 내 삶에 주어진 것에 대해 내 스스로 생각해서 얻은 것이 어떤 부분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서 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다시 얻어봐야 겠다.
본 서평은 거인의 서재(https://www.facebook.com/groups/gshoulder/)에서 책 주셔서 감사히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