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국가란 무엇인가

퐁~★ 2017. 11. 13. 16:27

일시 : 2017.11.15

제목 :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 유시민

책 속 문구 :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철학과 이론은 몇 가지 큰 흐름으로 갈래를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이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창안한 이 이론은 150여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당겼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로크는 시민들의 동의에 의거하고 범에 따르는 통치를 주창했다. 스미스는 사회의 부를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국가가 시행한 자의적 간섭과 특권의 철폐를 제안했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으로 내세웠따.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론의 핵심이다.


국가가 여전히 지배계급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는 여전히 유산계급에 우호적이고 무산계급에 적대적이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 자시니 아니라 정부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맹자의 국가론은 서로 다른 점이 많지만 한 가지는 같다. 바로 목적론적 국가론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선, 정의, 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는 안정되고 통합된 국가일 수 없다.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에 대한 꿈은 언제든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중략) 따라서 민주주의는 국가가 선을 행하는 것도 동시에 방해한다.


애국심은 내가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를 배척하는 감정이다. 국가는 때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쟁과 학살이라는 끔찍한 참화 속으로 몰아간다. 다른 어떤 사랑의 감정도 이런 엄청난 악을 저지르도록 사람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 기억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망각과 용서가 필요하다.


진보정치는 무엇인가? 진보정치는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국가에 대한 다섯 번째 질문이다. 이제 대답을 할 수 있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활동이다. 직접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목표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악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도덕이 개인의 내면에서 형성되는 이성적 의식인 데 반해, 국가 또는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집단적 감정과 충동이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정의가 무엇인지, 국가로 하여금 어떻게 정의를 실현하게 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면 그 어떤 철학자의 위대한 저서보다 먼저 헌법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


"처세의 규칙은 경험적 원리를 기초로 한다. 그러나 도덕법은 경향성이나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자연의 수단과는 전혀 관계없으며, 다만 이성적 존재 일반의 자유와 이 자유가 원리에 따라 분배된 행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필연적 조건만을 고찰한다. 따라서 도덕법은 적어도 순수이성의 단순한 이념을 기초로 하는 동시에 선험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나는 오로지 선험적으로 행동을 규정하는, 다시 말해 이성적 존재 일반의 자유 사용을 규정하는 도덕적 법칙이 실제로 있다는 것과, 이 법칙이 단적으로 명령하는 성질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관점에서 필연적이라는 것을 상정한다."

이것은 칸트이 도덕법을 압축한 문장이기 때문에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칸트의 '자유'는 강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칸트의 '자유'는 인간이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욕구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욕구가 이끄는 데로 가는 것은 자율적 행동이 아니다.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율적 행동이다.


칸트의 도덕철학에서는 오로지 동기만이 의미를 가지는 반면, 정치는 동기보다는 오히려 결과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당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는 행동준칙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정치에서는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할 있는 동기 때문에 한 행위가 최악의 참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오로지 칸트의 도덕법에만 의지할 경우 정치인은 의도하지 않은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


베버는 좋은 정치인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바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이다. 열정은 어떤 대의에 헌신하는 객관적 태도를 의미한다. 지적 흥미를 느끼는 것에 낭만적으로 몰두하는 '비창조적 흥분상태'와는 다르다.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은 또한 대의에 대한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내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사람과 사물에 대해 거리를 두고 현실을 관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거리감의 상실 또는 균형감각의 실종은 그 자체가 커다란 죄과이며 반드시 정치인을 무능의 길로 오도한다.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소유한 정치인은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극단적인 정치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정치활동에서도 정치가들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충돌 또는 부조화로 인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갈등을 일상적 언어로 바꾸며 원칙과 타협 사이의 갈등이 된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이다. 인간의 완전성과 선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 얻게 될 "예견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결과"를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는, 그리고 행위의 동가기 아니라 결과로 책임지려는 태도이다. 이것이 반드시 칸트의 도덕법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제력을 가지고 일하는 국가권력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때로 칸트의 도덕법을 외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세운 행위의 준칙이 아니라 단순한 '끌림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면서 '실용적 처세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대중의 요구와 그들이 요구하는 행위의 준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질'의 위험을 안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 그것이 정치를 통해서 선을 추구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느낀 점 :

 전직 정치인이자 젊은 적엔 유명한 항고 이유서를 작성했고 현재 내가 좋아하는 방송에 출연 중인 유시민이 생각하는 국가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이 있었다. 정치인의 자서전을 읽는 데는 관심이 없다보니 이 나라의 전현직 정치인이 생각하는 정치관이나 국가관에 대해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자서전 형태가 아닌 전직 정치인이자 현직 지식인인 유시민이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다양한 면에 알 수 있었다. 

 먼저 훌륭한 국가에 대한 저자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라고 한다. 또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라고 한다. 보수냐 진보냐,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의 흑백 논리와 상관없이 저자의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에 대한 생각에 동의한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는 국가가 아닌 누구에게나 기회를 열어 주고 공정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 이에게 그 만큼의 대가가 돌아가는, 즉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사회라고 생각되어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실에서 이뤄지기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책의 끝자락에 적어놓은 원하는 국가에 대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앞서 설명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난 이 말이 더 좋다. 단 한 명의 국가 구성원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국가라면 내가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누군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국가를 믿고 그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보는 현재의 사회엔 전혀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좋은 정치인에 필요한 세 가지 자질에 대해서는 열정, 책임 의식, 현실 감각을 이야기하고,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사이에 줄타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방송에서 언급한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조화롭게 살려나갈 때 우리는 이상의 돛을 달고 현실의 뒷바람을 받으면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사이의 줄다리기는 어렵지만 조화롭게 살려나갈 때 훌륭한 정치인이 될 것 같다.

 그 동안 정치인의 부패와 사회 부조리를 말하며 불평불만만 가득했지 내가 진정 원하는 국가상과 정치인들의 모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국가관와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많은 기초 지식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원하는 국가관과 정치인들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던 중에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속한 계급에 따라 좋은 국가에 대한 정의가 달라 질 수 있음을 느꼈다. 내 주변에 같은 비슷한 수입을 갖는 같은 계급의 사람조차 어떤 이는 세금을 더 내더라도 북유럽 3국과 같은 복지 국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정부 사람들을 믿을 수 없기에 차라리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걷어서 내 스스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상황, 계급이 같아도 생각이 다를 것인데 이마저 다르다면 이상적인 국가에 대해 개개인이 품는 모습은 완전 다양할 것이다. 

  앞으로 내 계급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도전에 실패해도 무섭지 않은 나라"다. 현재 우리 나라는 도전에 실패하면 그 순간이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 아니면 도인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소위 철밥통으로 알려진 우리 나라 공무원 지망생의 비율이 얼마나 많은 지만 봐도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이제껏 내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길에 있어서 최고의 철밥통인 전문직으로 갈 성적은 안되었기에 차선책으로 일자리가 많은 곳으로 선택해왔다. 만약 내가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내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있다. 또 내 인생도 살아내기 벅찬데 내 자식에게도 이런 삶을 물려줘야 한다는 게 안타까워서 아이 낳는 것이 두렵다. 현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답은 못내리겠다. 다만 현재 내가 바라는 국가는 "도전에 실패해도 무섭지 않은 나라"이다. 

  이상적인 정치가도 현재는 "정직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며 자신의 생각에 토론이 가능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정치가의 능력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해 연합하거나 전략적이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기에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부분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삶에 적용할 점 :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와 정치가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