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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본문

Books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퐁~★ 2018. 10. 31. 12:19

일시 : 2018.10.31

제목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 : 유현준

책 속 문구 :

계절에 어울리는 한 곡의 노래가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 같이 감성을 울리는 건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건축은 대중음악이 팔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축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건축이 많아질 때 현대 도시는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이해했을 때 건축 디자인은 실패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이제 홍대 앞에서 쫓겨난 예술가들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좇겨나는 건축가들이 가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봐야 할 시점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의 시간과 유기적으로 대화하면서 진화하고 있는가? 우리는 전승되어서 내려오는 건축 유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고 있는가?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성전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장소이지, 하나님이 집이 없는 분이라서 지은 것은 아니다. 절이나 다른 종교 건축물들 역시 인간의 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물이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다른 말로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뜻한다. 우리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생활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세상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큰돈을 들여서 큰 집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식나당으로 작은 공간을 렌트한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 방 같은 곳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산다. 자동차는 차의 내부가 방음이 되는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면서 공간의 부족으로 없어지는 사생활의 자유는 대도시의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완벽한 익명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 멀리 해외여행을 간다. 그런데 아주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마음먹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거기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김이 샌다.


뇌 연구가 앤드류 스마트의 책 [뇌의 배신]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멍 때리거나 명상을 하거나 빈둥거릴 때, 즉 뇌의 상태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되었을 때에 창의적이 된다고 한다. 작가는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설정된 목표와 시간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스파트폰을 계속 보면서 무언가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머리가 창의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옛 선현 중 장자가 '호접지몽'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잘 설명된다. 장자가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너무 현실적이라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인 내가 사람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겟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주관적 인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인터넷과 가상 공간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체혐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건축 공간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조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대신 정보의 해석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 이 시대에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다음 의문점은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였다. 개인적으로 '보이드(void), 심벌(symbol), 액티비티(activity)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진다.'라고 결론 내렸다. 보이드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 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심벌 정보는 간판, 족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이렁나는 행위가 무엇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건축 공간은 사람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으로서는 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 가지 관계가 더 필요한 것이다. 알다시피 사람 간의 소통의 기본은 문장이다. 그리고 문장은 단어와 문장 구성이라는 두 가지로 완성된다. 어려운 말로 시맨틱(semantic)과 신택스(syntax)라고 한다. 시맨틱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신택스는 우리가 영어 문법 시간에 배운 1형식부터 5형식까지 있는 문장 형식 같은 것을 말한다. 이렇듯 언어의 소통은 문장 구성이라는 그릇에 단어가 담겨져서 전달된다. 


마찬가지로 건축 공간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라는 문장 구성에 세 가지 종류의 정보라는 단어가 담겨져서 전달되는 것이다. 세 가지 종류의 관계들은 실제적(physical), 시각적(visual), 심리적(psychological) 관계이다. 실제적 관계는 볼 수도 있고 그곳에 갈 수도 있는 관계이다. 한강에는 다리가 있어서 강남과 강북은 실제적 관계가 된다. 시각적 관계는 볼 수만 있고 갈 수 없는 관계이다. 한강의 다리가 끊어지고 배도 없다면 강북과 강남은 볼 수 는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시각적 관계가 된다. 심리적 관계는 볼 수도 갈 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이다. 마치 계단식 아파트에서 같은 계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702호와 703호처럼 말이다. 이처럼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현실 공간부터 인터넷 공간까지 맗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클럽과 페이스북의 성장은 짝짓기를 갈망하는 20대가 키운 것이다. 이렇듯 가상의 공간이든 현실의 공간이든, 어떤 공간에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짝을 다양한 무리 속에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풀에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자의 개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건축은 밖에서만 바라보는 조각품과는 다르다. 건축은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낙수장]

http://lightnspace.tistory.com/144


특강을 하다 보면 종종 "어떻게 하면 한국적인 건축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접한다. 필자는 일단 이 질문에 한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다르다는 말로 답을 시작한다. 우리가 한국적 전통이라고 하는 것들은 주로 조선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마치 건축에서 한옥이 완벽한 정답이고 도자기는 고려청자, 이조백자가 최고라는 식이다. 과거를 지나치게 폄하해도 안 되지만 미화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의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 건축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비결은 그 시대의 수요와 기술에 가장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건축물 앞에는 설명서가 없다. 대신 공간이 말을 한다. 음악이나 미술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우해서 긴 설명을 하는 말이나 글이 필요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음악, 미술, 건축 같은 창조의 분야에서 창작자는 읽고, 보고, 먹고, 느끼고, 만나고, 살면서 하는 모든 경험들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자신이 선택한 매체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릇 예술은 체험하는 이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의 설명 없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낀 점 :

어릴 때부터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다들 직업을 말했다. 나는 항상 직업보단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 그림을 먼저 그렸다. 지금도 나이들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생각에 현실적으로는 조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닷가 절벽 위 주택에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곤 한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살 것인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심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이 그저 이런 그림으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과 저자의 또 다른 책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거주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리는 집은 넓은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의 집이다. 이처럼 건물은 건물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졌을 때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책 속의 낙수장이라는 건물은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도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이처럼 주변 자연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축은 인간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건축물과 공간의 구성은 인간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많은 영향을 준다. 골목길이 더 걷기 즐거운 길이라는 실험 결과나 교도소와 같은 학교의 구조로 인한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건물의 구조, 여행을 빗대어 익명성이라는 나만의 공간 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행동 등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공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 지 알게 되었다.

또 저자는 보여지는 공간, 실제적인 공간 등 공간의 구성을 통해서 건축가의 의도가 전달 될 수 있다고 한다. 별 다른 설명이 없이도 이런 공간의 구성을 통해서 건물의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공간을 통해서 건축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가와 음악가도 별 다른 설명없이 작품으로 이야기 한다. 미술와 음악을 우리가 예술로 보듯이 건축도 예술의 하나로 보게 되었다.


저자는 도시 속에서 건물과 거리, 공원의 어우러짐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또 건축을 통해 건물의 안과 밖을 바라보는 방법, 나아가 공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것으로 건축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했다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건물과 도로의 공간을 통해서 혹은 건물 안의 공간과 공간의 이어짐, 형태 등으로 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 감상자에게 메세지를 던지는 예술적 행위와 같다. 건축의 예술적 승화라는 거창한 의미 부여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집 구경, 건물 구경, 도시 구경을 하던 일반 소시민인 우리에게 공간에도 의미가 있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었다.


삶에 적용할 점 :

공간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상속자들 김탄 미국 집

http://charchiscout.com/wordpress/malibu-2555-27326-winding-way-east-malibu-ca-90265/